사설

지금 국회에서는 한미 FTA문제로 시끄럽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FTA의 전체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도 어렵고, 중요한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고서는 정작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한 한미 FTA의 비준을 두고 국회에서는 여야의 힘겨루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한미 FTA건과 관련해서 여당에서는 전례 없이 야당과의 합의를 통한 처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도 한미 FTA 협정문에서 국익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여 특히 투자자-국가간 소송제도(investor-state dispute, ISD)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최후통첩적인 제안에 대해 야당이 거부하는 당론을 정함으로써 이제 국회는 또 한 번 폭력적 사태가 발생할 우려에 직면하고 있다. 다수당인 여당이 강행처리를 암시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장은 직권상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충돌하면 결국은 승객이 목숨을 잃게 된다. 국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화의 장이 돼야지 싸움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

플라톤은 어리석은 다수의 정치보다는 명석한 리더십을 가진 일인의 정치를 찬양하였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철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600여년 전의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이 21세기의 이 땅에 다시 한 번 태어나도 누가 그를 알아볼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화를 거듭해 가는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본다.

대화란 다른 사상세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념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내가 그를 인정하기 싫은 만큼 그도 내 마음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절차를 공중분해시키고 장렬히 신념에 죽어가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최종적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사태가 그러함을 국민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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