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찬 문화재청장 인터뷰

얼마 전, 한국의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며 큰 화제가 됐다. 선정과 함께 제주도는 최대 1조 2천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이 갖는 힘을 잘 보여준다.
비단 제주도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도 한국인의 정신과 얼이 담긴 문화유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유산도 잘 보존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법. 문화재 보존과 그에 따른 관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문화재청에 최근 우리대학 김 찬(도시행정 77)동문이 청장으로 취임했다. 그를 만나 인생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살을 가방처럼 메고 다녔던 대학시절

김 찬 동문은 대학시절을 한마디로 ‘어두운 학창시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국립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당시 우리대학의 전신이었던 서울산업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국어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도시행정학이라는 학문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해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그는 좌절감에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삶의 목표나 삶의 목적에 있어서 심각한 방황을 겪었어요. 1년 동안 아주 홍역을 치렀죠. 마치 자살을 가방처럼 메고 다녔던 것 같아요”라며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1년간의 방황 끝에 그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토론회도 가고, 문학책도 보고, 친구들과 책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종교 경전에 심취하게 된다. “논어는 졸업하기 전까지 7~8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불교에도 심취해서 화음경, 법구경, 금강경 등을 읽었고 한 때는 코란도 읽었었죠” 그러던 중 기독교 성경을 접하게 됐고 우연히 간 교회에서 한 목사님을 만난다. 목사님을 통해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됐다. 그는 “평생의 은인이신 목사님을 통해 4학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이 밝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던 유학시절

애초에 교사라는 꿈을 갖고 있었던 김 찬 동문은 사범계열 대학 진학 실패와 함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실패를 맛보았던 그이기에 다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통해 행정고시라는 제도를 알게 됐고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1981년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직생활을 하던 중 그는 신학 공부를 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해외유학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는 미국 에즈베리 신학대학원에서 2년 동안 계절 학기를 빠짐없이 들으며 신학 공부를 했다. 그는 그때 당시를 행복했다고 표현했다. “신학공부는 삶의 의미를 찾던 과정 중 하나였어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는 졸업할 때 상을 3개나 받았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김 찬 동문은 그때의 유학시절이 신앙적으로도, 삶에 있어서도 많은 밑바탕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은 우리의 뿌리, 얼, 자체다

김 찬 동문은 재무부를 거쳐 1988년 문화부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2003년 문화관광부 공보관에 이어 관광국장, 문화산업진흥단장, 문화콘텐츠산업실장, 관광산업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9년 문화재청 차장에 임명된 뒤 올해 9월 청장으로 승진됐다. 그는 공직생활의 3분의 2를 문화와 함께한 셈이다. “문화 업무가 제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또 문화부에는 종교 관련 업무가 있어서 신학 공부와도 연결될 수 있었어요”라며 그가 지금껏 문화 업무를 고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찬 동문에게 있어서 문화유산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는 “문화유산은 우리의 뿌리고, 우리의 얼이고, 우리 자체예요”라고 말했다. “문화유산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는 것은 우리를 잘 지키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모습이 나중에는 후손들의 문화유산이 돼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잘 살아야 하는 것이죠” 또한 그는 앞으로의 문화재보존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문화재 보수, 복원 작업은 이제 최첨단으로 바뀌고 있어요. IT와 같은 첨단 기법을 문화재에 어떻게 접목시키느냐가 중요해졌어요. 또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만큼 문화재를 어떻게 국민들의 삶 속에서 공유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나 방향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서울시립대 후배들에게 김 찬 동문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는 늘 행복을 보류하는 버릇이 있어요.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교 가야 남자들, 여자들이 줄을 선다, 대학생 때는 좋은 직장 다녀야지, 직장 생활 때는 승진해야지. 우리는 늘 행복을 보류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행복하지 않아요”라며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돼요.

제가 경험해보니깐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고요. 그러니깐 빨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밥벌이가 좀 덜 되더라도 말이죠. 절대 굶어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많은 책을 읽어야한다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00권 정도는 읽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젊었을 때 책을 읽으면 늙어서도 책을 읽게 돼요. 젊어서도 책을 읽지 않으면 늙어서는 화투나 치고 TV나 보고 사는 거죠. 책 읽는 버릇을 들여야 해요. 한비야 선생은 1년에 100권을 목표로 삼고 평생을 읽고 있다는데, 그 정도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여행을 많이 하라며, 특히 걷는 여행을 추천했다. 그는 “우리는 걸을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걸으면서 나무나 풀, 돌 등 많은 존재들이 각자의 양식대로 살아간다는 삶의 다양성을 배울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좀 더 겸손해지고, 삶이 여유로워지고 풍요로워지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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