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찬 문화재청장 인터뷰
얼마 전, 한국의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며 큰 화제가 됐다. 선정과 함께 제주도는 최대 1조 2천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이 갖는 힘을 잘 보여준다. 비단 제주도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도 한국인의 정신과 얼이 담긴 문화유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유산도 잘 보존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법. 문화재 보존과 그에 따른 관리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문화재청에 최근 우리대학 김 찬(도시행정 77)동문이 청장으로 취임했다. 그를 만나 인생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살을 가방처럼 메고 다녔던 대학시절 김 찬 동문은 대학시절을 한마디로 ‘어두운 학창시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국립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당시 우리대학의 전신이었던 서울산업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국어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도시행정학이라는 학문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해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그는 좌절감에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삶의 목표나 삶의 목적에 있어서 심각한 방황을 겪었어요. 1년 동안 아주 홍역을 치렀죠. 마치 자살을 가방처럼 메고 다녔던 것 같아요”라며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마음껏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던 유학시절 애초에 교사라는 꿈을 갖고 있었던 김 찬 동문은 사범계열 대학 진학 실패와 함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실패를 맛보았던 그이기에 다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통해 행정고시라는 제도를 알게 됐고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1981년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직생활을 하던 중 그는 신학 공부를 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문화유산은 우리의 뿌리, 얼, 자체다 김 찬 동문은 재무부를 거쳐 1988년 문화부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문화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2003년 문화관광부 공보관에 이어 관광국장, 문화산업진흥단장, 문화콘텐츠산업실장, 관광산업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9년 문화재청 차장에 임명된 뒤 올해 9월 청장으로 승진됐다. 그는 공직생활의 3분의 2를 문화와 함께한 셈이다. “문화 업무가 제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또 문화부에는 종교 관련 업무가 있어서 신학 공부와도 연결될 수 있었어요”라며 그가 지금껏 문화 업무를 고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서울시립대 후배들에게 김 찬 동문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는 늘 행복을 보류하는 버릇이 있어요.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교 가야 남자들, 여자들이 줄을 선다, 대학생 때는 좋은 직장 다녀야지, 직장 생활 때는 승진해야지. 우리는 늘 행복을 보류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행복하지 않아요”라며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