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고수들 - (13)근대철학의 통일과 해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최근 대통령의 ‘비준 시 3개월 후 재협상’이라는 카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신경전은 갈수록 거세지는 분위기다. 할 만큼 했으니 남은 것은 표결처리뿐이라며 강행의지를 불태우는 여당의 분위기는 회의하는 자의 ‘아구창’을 날릴 기세로 등등하다. 반면 야권은 구두약속만 믿고 비준하는 것은 ‘독만두’를 먹은 뒤 병원 가는 꼴이라며 실력저지에 나설 태세다.

언제나 그렇듯 국회는 치고 박고 ‘대화와 토론’의 부재, ‘협상과 타협’의 실종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연 아름다운 합의란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특히 FTA처럼, 산업분야의 희비가 엇갈리고 공익과 사익의 충돌이 예상되는 경우라면 더더욱 말이다.

갈등의 해법은 절충을 통한 타협일까? 선택에 따르는 결단일까? 만약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이미 사색의 역사 속 논쟁의 현장으로 한 발 다가간 셈이다. 전자의 입장은 종종 헤겔로 대표된다. 그는 변증법을 통해 대립되는 두 진영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화해로 나가는 길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화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역설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키에르케고르이다. 쇼펜하우어의 반헤겔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는 헤겔철학의 핵심을 세심하게 공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그 핵심에 변증법이 놓여 있다. 그가 보기에 변증법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정작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헤겔 변증법은 논리학의 지주인 ‘모순율’과 ‘배중률’을 과감하게 해체함으로써 A이자 not A인 모순적 상황을 정당화했다. 누군가 헤겔에게 결혼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고 치자. 키에르케고르는 만약 헤겔이라면 이렇게 답했을 거라며 조롱한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또 만약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역시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거나 안하거나 당신은 후회하게 된다. (…) 이것이 모든[사실은 헤겔] 철학의 요약이자 본질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답을 제시했을까? 그 역시 주관적 선택에 객관적 잣대는 없다고 여겼지만 중요한 건 각자의 결단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중간은 없다. 우리의 결단 앞에 놓인 건 그의 책 제목처럼 단지 〈이것이냐 저것이냐〉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일까?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에 따르면 선택에 앞서 우리가 처한 조건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조건은 우연적이며 그 자체로 불확실함 속에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실존’이다. 불안정한 실존은 절망의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약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연 속에 깃든 선택의 ‘자유’를 깨닫고 결단을 행할 경우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인물상을 ‘신념의 기사’라고 칭했다. 독실한 그가 염두에 둔 인물은 신의 부름 앞에서 자식을 제물로 내 놓았던 성경 속의 아브라함이었다. 신념의 기사는 결국 ‘신 앞에 선 단독자’였던 셈이다.

다시 FTA로 돌아와 보자. 이 글이 실릴 시점이 되면 아마도 국회 본회의를 경과하면서 비준동의안 통과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무리수를 두고서라도 도식적으로 말해보면, 헤겔의 진단이 옳은지 아니면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이 옳은지 여부도 가려지게 될 것이다. 혹여 결과가 후자 쪽으로 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반성적 행위를 동반하는 실존적 자아는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성을 온전히 떠안아야만 한다. 과연 정치인들이 그러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신재성(철학과 박사과정)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