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ITAS_베리타스는 ‘지혜 또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한·미 FTA 비준안이 결국 통과됐다. 민주당은 이번 비준안 통과를 ‘날치기’ 처리라고 비난하며 한·미 FTA 전면 무효화 투쟁에 들어갔다. 앞으로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촛불집회를 통한 장외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의견을 들어줄 만큼 들어줬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홍준표 대표가 트위터를 통해 말했듯이 ‘국익’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익.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이 단어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국익은 어떤 반대 의견도 무마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 2003년 명분 없는 전쟁이었던 이라크전에 참가한 이유도 국익이었고, 2009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유례없는 단독 특사로 풀려날 때도 국익이 등장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경제 회복을 통한 국익 증진이 그 이유였다. 정부기관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도 국익은 등장했다. 올해 초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잠입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국정원은 국익이라는 이유로 침묵했다.

정부와 여당은 FTA를 통해 수출 증대와 무역수지 흑자, 막대한 일자리 창출을 이뤄낼 수 있고 이것이 곧 국익이라고 주장한다. 지속되고 있는 경제침체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각종 국책연구기관들도 FTA 발효로 실질 GDP 5.7% 증가, 35만개 일자리 창출 등의 기대효과가 있다며 FTA 국익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국익’이 진정으로 ‘국가의 이익’이 될지 걱정이다. FTA를 통해 모두가 이익을 볼 수는 없다. 자동차산업 같은 수혜업종도 있지만 농업, 제약업 등 취약 업종들은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한 이익이 고스란히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진 않을지 걱정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사상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힘으로만 이뤄낸 성과라며 초과이익을 나누길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들의 성과 뒤에 중소기업의 희생과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이 SNS를 통해 홍준표 대표의 말을 패러디하며 국익이 ‘미국의, 돈 많은 자들의, 대기업과 거대자본의’ 이익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FTA는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보증수표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자유무역은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리주의가 가진 맹점에 주의해야 한다. 최대 다수에 밀려 희생하게 된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FTA로 인해 누군가 불가피하게 피해를 본다면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FTA로 인한 이익이 그들만의 이익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익이 실현되는 길이다. ‘국익’이라는 숲을 개발하는 데 정신 팔려 그 안의 나무가 상해가고 있는 것을 모른척하다가는 결국 숲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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