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의 소리

또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한 해의 매듭을 새롭게 지으려 할 때마다 늘 다사다난했노라고 말하기 일쑤이지만, 올해처럼 이런 표현이 실감나게 다가오기도 어려울 듯하다.

특히 우리대학으로 시선을 좁혀 지난 일을 상기해 볼 때 그렇다. 올 1학기 총장 선거를 거치며 내면적인 고투와 갈등의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지만, 2학기엔 갑자기 들이닥친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또 때 아닌 논란과 여론의 홍수전을 겪어야했다. 하지만 한 해를 수습해야 할 지금은 지나간 이 모든 사건들, 상처들을 지우고, 새로이 맞이할 또 한 해의 준비와 올해 각자가 거둘 수확, 그리고 공동체의 바람직한 미래와 내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하지만 또 시선을 내년의 한 해 일정으로 옮겨놓고 미래에의 투기와 진취를 향한 전향적인 자세 갖추기에 나서보련다 해도, 올해 우리가 겪었던 지난한 정치적 토론에의 과정이 내년에도 다시금 되풀이돼 국력 소모와 피차 상처주기의 우행이 되풀이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다름 아닌,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국가 대사의 일정이 또 우리 앞에 가로놓여있기 때문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응당 더 좋은 정부 마련과 국민의 대표 선출을 위한 행렬에 동참해야 하지만 이럴 때 제기되는 문제들은, 또 늘 지나친 정치적 과잉 열정 상태로 말미암아 주어질 국론 분열,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내면적 공허의 피폐한 문화 상태라 할 수 있는 터이다. 흔히 진보는, 정치를 통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또 보수는 궁극적으로 문화가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 신념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쪽이든 균형을 잃게 되면, 그만한 댓가 지불을 요구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허다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깨우칠 수 있다.

그러니까 예컨대, 정치적 지불 자체를 피하고자 할 때, 독재정부와 같은 엄청난 정치적 재난의 사태에 직면할 위기를 초래하게도 되지만, 또 한편 정치적 에너지의 과잉 사태와 같은 것이 뒤끓는 용광로 속의 높은 엔트로피 상태처럼 불안과 혼란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 또한 키운다는 점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점점 이처럼 비등해지는 사회적 열정의 과잉 상태, 정치적 잉여 에너지의 계절들을 앞두고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동서양의 현인들이 늘 깨우쳐 왔던 ‘중용’의 태도가 이럴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의 지표로서 부각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니까 늘 토론에 임해서는, 합리적이고 열린 지성의 태도로서 마땅한 구극의 지점까지 나아가려는 열망을 감춰서 안되겠지만, 늘 사태에 임해서는 또 냉철하고 이지적인 태도로서 중용의 균형점을 구하고, 한편 결과에 임해서는 동양적인 관용과 서양인들이 말하는 ‘톨레랑스’의 태도로서 폭넓게 세계를 껴안으려는 현명(賢明)의 자세가 무엇보다 긴요하고 바람직하지 않을까 여겨지는 터이다.

누구보다 우리는 대학 속에 몸담은 대학인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이성을 발휘하고 이성을 감당할 수 없다면, 또 어떤 곳에서 그러한 현명의 지혜를 예비한 공간을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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