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식 유해매체 지정, 콘텐츠계 반발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문화 콘텐츠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웹툰 23편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를 주무부처로 해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하고 몇몇 음반에 대해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여성부와 방통위의 이 같은 규제는 문화 콘텐츠에 사용되는 소재들이 학교폭력, 술, 담배 등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 시행됐다. 하지만 이러한 처분에 대해 과도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 해당업계의 입장이다.

만화계, 웹툰 유해매체 지정에 강력하게 반발
지난달 27일 만화업계는 방통위의 웹툰 심의 철회를 촉구하는 거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방통위의 유해매체 지정을 두고 만화산업을 궤멸 상태로 내몰았던 1997년 청소년보호법 사태와 다름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일 범만화인비상대책위원회는 웹툰 23개 작품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최종지정 여부에 관한 방통위의 심의결과를 지켜본 후, 당초 결정대로 유해매체로 지정된다면 방통위 심의기능의 적절성에 대한 소송까지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된 1997년 이후 출판만화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었던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범만화인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윤태호(44) 작가는 “방통위 심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최종적으로 웹툰 23개 작품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고시한다면 행정소송과 가처분소송 등 법적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만화가들은 완전 자율을 원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협의가 된다면 게임처럼 작가가 직접 이용가능 연령을 지정하는 등급제 도입도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찬휘(34) 만화 칼럼니스트 역시 “웹툰의 사전심의 대상 여부, 사전심의에 따른 작가들의 권리침해 여부 관계 등에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법리논쟁이 장기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최근 만화계의 반발에 대응해 방통위는 웹툰에 대한 중점 심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로 방통위는 “온라인 만화를 사전심의 하자는 게 아니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뒤 성인인증을 거치도록 하려는 조치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규제에 게임 사용자들 불만 폭발
정부의 콘텐츠 규제에 대한 반발은 게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부는 지난해 11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이에 지난 6일에는 초등학생 3명을 포함한 10대 7명이 셧다운제 시행에 불만을 품고 여성부 홈페이지를 디도스(DDoS) 공격했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학부모가 18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임의로 제한할 수 있는 ‘선택적’ 셧다운제를 작년 12월부터 시범 운영하고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선택적 셧다운제는 강제적 셧다운제보다 적용대상이 넓고 부모가 임의로 제한시간을 정할 수 있어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또한 그동안 도입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던 ‘쿨링오프제’가 지난달 1일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안’에 포함됐다. 쿨링오프제는 2시간 동안 온라인 게임을 하면 자동으로 접속을 종료시키고 10분 경과 후 1회에 한해 재접속을 허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또한 유통 중인 게임을 사후에 심의하는 ‘게임 사후심의제(가칭)’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는 정부의 무책임한 게임 규제가 게임산업 전체를 위협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규제가 중복으로 가해지는데다가 해당 법안에 대한 실효성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특히 현재 시행중인 강제적 셧다운제는 부모 인적사항을 도용할 경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청소년들의 네트워크 게임 이용을 제지하는 것은 청소년의 게임절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게임 개발업체의 한 관계자는 “게임이 청소년문제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무런 근거 없이 게임이 졸지에 청소년문제의 주범이 됐다.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 없이 정부 편의대로 정책을 만들다 보니, 화살이 게임 산업으로 오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게임업계의 거센 반발에 대응해 정부에서는 각 게임 콘텐츠 제재정책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심의 그물망이 적당한 넓이를 찾아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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