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죄수를 교화할 수 있는 시설로 원형 감옥 ‘파놉티콘’을 제안했다. 원형의 건물로 설계된 파놉티콘에는 바깥쪽 원주에 죄수의 방이 있고 가운데에 그들을 감시할 간수의 공간이 있다. 죄수의 방은 햇볕과 조명 설비로 환한 반면 간수들의 공간은 어둡게 되어 있다. 때문에 간수들은 죄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필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간수들이 자신을 지켜보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죄수들은 이 불확실성 때문에 점점 감옥의 규율을 내면화한다.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파놉티콘은 무형의 형태로 다시 다가온다.
들뢰즈는 우리의 사회를 ‘통제사회’라며 ‘컴퓨터와 기업이 지배하고 숫자와 코드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고 설명한다. 눈부신 정보 기술의 덕분에 이런 지배는 더욱 공고해 지고 있다. 1995년 우리 정부는 주민등록증, 등초본, 인감, 지문,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국민연금 총 7개 증명, 41개 항목을 포함한 전자주민카드를 발급하려다 여론의 반대에 무산되었다. 2001년에도 개인의 모든 진료 기록과 신용카드를 겸한 전자건강보험증을 만들려다 역시 여론에 밀렸다. 자신이 찍히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CCTV는 우리를 비추고 녹화시킨다. 우리의 지문은 이미 정부의 정보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있다. 핸드폰에 칩을 내장해 범인이나 실종자의 위치를 찾아내는 위치추적시스템도 검토 중이다. 우리의 정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있다.
권력은 통제의 효율성을 위해 피지배자들의 정보를 요구한다. 그 정보는 감시에 의해 획득된다. 정보를 통한 권력의 통제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군대에도, 공장에도, 교육기관에도, 기업 내부에도. 그 권력은 자본일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누가 무엇 때문에 우리를 감시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러한 감시와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미 익숙해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적응했다. 진정한 자유는 상당한 피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혜택은 현재적이고 눈에 보이지만, 불이익은 불확실한 미래의 것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본다. 이 거대한 파놉티콘을 부술 용기도, 그럴 마음도 현재 우리에게는 없어 보인다.
최근 NEIS(전자교육정보시스템, Network Education Internet Service)가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모양이다. 학생의 건강기록부와 학생생활기록부를 교육부에서 데이터 베이스하는 이 사업에 많은 이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물론 이 정보들은 다른 개인의 정보와 마찬가지로 경찰청, 국가정보원과 같은 국가기관에 자유롭게 제공된다. 어릴 적 겪었던 숨기고 싶은 병력도,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저질렀던 실수도 감출 수 없다. 그런 정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구에 의해 관리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한층 더 담벼락이 높은 파놉티콘에 살게 될 것이다. 더 많은 편리가 약속된 파놉티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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