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의 소리_이동하(국어국문학과 교수)

고전을 찾아 읽는 일에 열정을 기울이는 젊은이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아마도 두 가지 사정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책읽기 이외에 젊은이들의 관심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말초적인 놀이감들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아졌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무한경쟁’을 부르짖는 세상의 살벌한 분위기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고전 같은 것을 가까이할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사정은 모두 인류사 속에서 이른바 ‘근대’라고 지칭되는 시대에 들어와 엄청난 기세로 팽창한 새로운 현상들의 목록 속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두 가지 사정을 포함한 다수의 새로운 현상들을 무더기로 만들어내며 거침없이 역사의 트랙 속을 질주해 온 이 ‘근대’라는 시대는 이제 그 발전의 극한점을 넘기면서 근본적인 반성과 전복이 요구되는 단계에 와 있다. 쉬운 말로 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탈근대’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더 견디어낼 수 없는 지점으로까지 오늘의 인류는 떠밀려 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전복하기 위한 싸움은, 다시 말해 탈근대를 성취하기 위한 싸움은, 지금까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고전 찾아 읽기’ 같은 작업이 역사의 새 단계에 임해서는 오히려 가장 진보적인 행동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젊은 패기와 열정을 쏟아 이런 일에 몰두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전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을 만한 수많은 텍스트들 가운데서도 특히 고전적인 ‘문학’ 작품들은, 그러한 ‘읽기’ 작업의 현장에서 단연 첫 번째의 대상으로 선택될 만하다. 고전적인 문학 작품들은, 그것이 문학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거의 자동적으로 가지게 되는 상상력의 자유분방함과 스타일상의 친근함으로 하여, 읽는 사람에게 비교적 부담을 덜 주면서 자연스레 깊은 반성으로, 힘 있는 전복으로, 실속 있는 성취로 나아가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진행한 김에, 이 글을 읽고 혹시 공감하는 학생이라면 우선적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고전 텍스트를 둘만 언급해 두고자 한다. 하나는 일연의 『삼국유사』이고, 다른 하나는 엘리엇의 『황무지』이다. 전자는 오늘의 인류가 탈근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의 깊게 음미할 만한 참조사항들을 풍부하게, 매력 넘치는 모습으로 담고 있는 텍스트이다. 그리고 후자는 인류가 왜, 어떻게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모색의 역정을 절절한 울림으로 전해주고 있는, 가슴을 저리게 하는 명편이다. 물론 그 둘 모두 드러누워서 읽어도 좋을 만큼 쉬운 책은 아니며 충실한 주석서와 함께 꼼꼼하게 읽는 수고를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텍스트들임은 알고서 대들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