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보다 먼저 사용된 동물 그림의 상징
융의 집단무의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어

  야구장에 가본 사람이라면 팀을 응원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동물 마스코트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도 흔히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을 상징으로 삼는 경우는 운동경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기업, 각종 단체들도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을 선정하곤 한다. 이들은 동물이 갖는 상징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를 표현하려 한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우리 삶 속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동물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유지되고 있다. 인간은 언제부터, 어떤 상징을 동물에게 부여한 것일까.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상징

 구석기시대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말, 들소, 사슴들이 그려져 있다. 벽화는 그때 당시 옛날에 그려진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만큼 정교하다. 이렇게 고대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벽화를 그린 것은 단순히 재미삼아 그린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벽에 동물을 그림으로써 동물이 지닌 물리적인 능력을 얻기를 기원했다. 자연 속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인간은 생존을 위협받으며 살아갔기에 동물의 힘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 그 힘을 얻기 원했던 것이다. 부족사회를 이룬 신석기 시대에도 이런 성향은 이어진다. 인간은 동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힘과 잘 이어져있다 생각했다. 그 힘을 얻고자 부족들은 동물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고 토템을 만들어 기원했다.

 고대국가인 이집트의 신화 속에서 동물의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집트인은 동물이 가진 특성을 통해 자신들의 신이 가진 능력을 표현하려 했다. 하늘의 신 호루스는 매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매는 높이 날며 세상을 바라보는 동물이기에 호루스의 얼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하늘의 신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사자(死者)의 신인 아누비스는 개(犬)과의 동물인 자칼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아누비스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승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집트인은 아누비스를 통해 인간을 수호하는 충성스러운 개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 매의 얼굴을 한 하늘의 신 호루스
▲ 자칼의 얼굴을 한 사자(死者)의 신 아누비스

 

이집트 못지않게 많은 신을 갖고 있는 인도에도 동물을 닮은 신이 존재한다. 먼저 인도를 대표하는 동물인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가 있다. 코끼리가 수명이 길기 때문에 노령의 지혜, 위엄 등을 상징하게 됐다. 따라서 지혜, 분별, 학문의 신인 가네샤의 머리가 코끼리의 형상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상징성을 가진 동물로 호랑이를 찾아볼 수 있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강력한 힘을 지닌 호랑이와의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호랑이를 쉽게 막을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호랑이를 적대하는 대신 신수로 대하게 됐다. 그 후 호랑이는 힘과 지혜를 가진 존재로 설화 속에 등장해 악인에게 벌을 주고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로 형상화됐다.

▲ 코끼리 얼굴을 한 행운의 신 가네샤
▲ 민화 속에 등장한 호랑이

 

상징을 이해하는 열쇠, 집단무의식

 여러 사람이 동물이 갖는 상징성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통해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융은 인간의 마음은 자아,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자아는 사고, 감정, 의지를 통일하고 주관하는 주체인 나를 말하며, 개인무의식은 일상생활에서 잠재돼 의식으로 발현되지 않지만, 특정한 국면에서 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집단무의식은 수천 년 간 이어져온 인간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태도와 사고방식이 모여 있는 장소다. 이런 경험들은 접근하기 힘든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심상의 형태로 잠들어있다. 융은 이것을 ‘원형(Archetypes)'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원형에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지만 특정한 경우에 발현되는 상징적 이미지는 파악할 수 있다. 즉 집단무의식 속 원형은 인간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것이고, 상징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특정한 상징이 모든 문화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서양에서는 사악하고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주로 묘사되지만, 동양에서는 건강, 지혜 등을 상징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선한 존재로 표현된다. 이런 현상은 개인적인 창의성과 문화·지리적인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원형이 표현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창조성이 개입되기 때문에 원형을 어떤 상징으로 표현하는가도 약간씩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척박한 환경을 가진 지역의 신들은 강인하고 육체적인 능력이 강조되지만, 평화로운 환경의 신들은 보다 정신적이고 미묘한 특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같은 상징이라도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김태현 기자 gep44@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