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트 날,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청계천을 걸었다. 얼마나 꼭 잡고 걸었던지 그녀가 손을 너무 세게 잡는다고 나무랄 정도였다. 나는 그녀를 달래며 그녀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그 순간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고, 또 이성의 손을 처음 잡아보는 나로서 그 순간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설렘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자 친구의 손을 잡는 것이 그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그녀의 손을 잡아도 예전과 같은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게 그 분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 분은 바로 권태였다.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는 말처럼 서로의 장점만을 바라보며 상대방에게 깊은 애정과 사랑을 느낀다. 서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하고, 하루라도 연락하지 않는 날이 없다. 이들에게 만남은 설렘의 연속이며, 함께하는 모든 일들은 행복 그 자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눈 커플들은 쉽게 ‘결혼’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들의 열정적인 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만남을 거친 후 연인들은 권태를 겪게 된다. 처음 사귈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변해만 가는 상대방의 모습에 점점 실망을 느낀다. 평소에 그토록 외모에 신경을 쓰던 그가 머리도 감지 않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데이트 장소에 나온다. 다소곳이 앉아 적은 양의 음식만을 먹었던 그녀가 입속 가득 음식을 넣은 채 삼겹살 2인분을 추가하기도 한다.

 연인들은 상대방의 달라진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다. 상대방의 다른 모습에 “내가 속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곧이어 상대방에게 변했다고 다그치곤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말다툼이 되고 이는 곧잘 싸움으로 변한다. 싸움이 거듭됨과 함께 서로가 겪는 상처도 쌓여만 간다. 결국 상처를 견디지 못한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이별’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권태라는 벽을 이겨내지 못한 연인들은 이별이라는 결말을 맞게 된다.

 권태를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CBS 교양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김창옥 교수가 말했던 조언이 도움이 되리라 본다. 김창옥 교수는 강연에서 “누구나 열정을 가지게 되지만 열정은 곧 식는다. 열정은 권태가 된다”라며 “권태를 잘 이겨내면 이는 곧 성숙이 되고, 권태를 견디지 못하면 우울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권태를 성숙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니’를 제시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솔로몬과 다윗의 반지에 적혀있는 글귀다. 김창옥 교수는 권태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조언은 오늘날 권태를 겪고 있는 연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권태를 느끼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당신도 권태를 느끼는 가? 걱정마라. 권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박종혁 기자 jongh180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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