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의 자구노력에 비해
기고자 부족 등 학생들 관심은 부족해

옛날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우나라와 괵나라, 진나라가 있었다. 어느 날 우나라에 진나라의 사신이 찾아와 괵나라를 치려고 하니 우나라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이에 우나라의 대신 궁지기는 “우나라와 괵나라는 이와 입술의 관계에 있으니, 괵나라가 멸망하면 우나라도 안전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나라 왕은 진나라의 요구를 들어줬고, 진나라의 군대는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멸망시키고 말았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순망치한의 고사는 여기서 나왔다.

얼마 전 우리대학 교지에 대한 예산삭감이 이루어졌다. 교지의 진보적 논조에 대한 징벌적 의미로 이루어진 이번 조치가 순망치한의 예가 될까 두렵기만 하다. 예전부터 우리대학 교지는 교수의 성추행 사건과 총학생회와 대학본부의 백두산 여행 등을 취재하며 학생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하지만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앞으로 교지가 제대로 발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는 바로 학생자치언론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회비로 만들어지는 교지가 너무 진보적 논조를 가지고 있다”며 교지의 예산삭감을 건의한 학생들의 주장은 이해할 수가 없다. 교지는 표지에 명기해 놓았듯 진보언론을 표방하는 잡지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언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편집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쥐에게 ‘찍찍’이라고 짖지 말고, ‘야옹’이라고 울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또한 교지가 학내 사안에 대해 다루지 않으며, 학생들의 목소리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 이미 예전에 이루어진 예산삭감 이후로 교지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학문화라는 딱딱한 이름을 시럽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꿨고, 학생들의 기고를 독려했다. 또한 해외탐방 프로그램에 다녀온 학생들의 사례를 교지에 실어내는 등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요구에 맞추려는 교지의 자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에 호응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교지 편집장이 커뮤니티를 통해 호소했듯이, 기고를 하는 학생이 없어 주변 사람들을 통해 기고를 받아야 했다는 이야기는 교지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약 학생들이 정말 교지의 내용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바꾸려고 마음먹었다면, 예산삭감 같은 조치 대신 교지편집에 참여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없이 또다시 교지편집위원회의 예산을 삭감한 것은 올바른 조치가 아니다.

학생자치언론의 약화는 그대로 학생들의 발언권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교지의 예산삭감은 뼈아프다. 후일, 예전처럼 학생들의 목소리를 실어야할 매체가 진정으로 필요해질 때, 우리는 진나라에게 길을 빌려준 우나라와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임주혁(국어국문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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