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20일 8시, 도쿄의 지하철에는 강력한 독성을 지닌 사린가스가 살포된다. 옴진리교 교주의 지시를 받은 신도들이 5개의 지하철 열차에서 무차별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으로 5,500여명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12명이 사망했다. 경찰의 수사결과 교주는 경찰이 옴진리교에 대해 집중수사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게 돼, 경찰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사건을 계획했다고 밝혀졌다. 물론 교주는 신자들에게 예언한 종말론을 실현시키라는 핑계를 댔다. 교주의 지시를 겉보기에는 멀쩡한, 아니 일본 사회의 엘리트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수행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신이상자나 사회 부적응자가 아닌 좋은 직장과 뛰어난 두뇌를 지닌 사람들이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만나고 가해자들이 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는데, 그 중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생각이 있다. 바로 가해자들이 주로 읽는 책 중에 소설책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런 사실에 주목하면서, 가해자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회과학, 철학, 과학 관련 도서들은 많이 읽었지만, 명백한 픽션인 소설책은 자주 접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어딘가에 몰입하는 성격을 지닌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옴진리교를 찾았고, 차츰차츰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됐다. 그 결과 교주가 말하는 예언의 비현실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의 지시를 따르게 된 것이다.
지난해 새로운 진보를 외치며 탄생했지만, 다른 방향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통합진보당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들 안에도 상처받은 옴진리교 신자들처럼 이념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닐까. 그 이념을 위해서는 부정투표도 서슴지 않고, 잘못이 드러난 상황에도 반성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사상적으로 깊은 공부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 딛고 살고 있는 현실을 소홀히 한 것만 같다. 정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자신들만의 소설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지난 6일 통합진보당 서울시 당기위원회는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한 구 당권파 이석기, 김재연 의원과 황선 후보, 장애인 대표 조윤숙 후보에 대해 출당명령을 내렸다. 힘들게 얻은 의원자리지만, 쇄신하는 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하루키는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후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생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상을 듣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반면에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비일상적이며 허공에 뜬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 비어있고 잘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자신들만의 비어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땅에 발 딛고 서있는 새로운 진보가 필요한 것이다.

김태현 기자 ge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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