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를 호령한 제후들과 영웅들의 기록, 사마천의 『사기(史記)』
『위대한 패배자』 속에 담긴 패배의 드라마와 실패를 향한 예찬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명제는 긴 세월동안 당연한 것으로 인식됐다. 에디슨의 집념과 칭기즈 칸의 야망, 콜럼버스의 개척정신은 항상 본받고 배워야할 점으로 여겨졌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업적을 쟁취한 사람은 위인으로 칭해지고 그들의 습관과 사상을 배워야 한다고 부르짖는 자기계발서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들은 각 분야의 1인자였으며 곧 승리자였다.
사마천의 『사기』는 그러한 승자들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던 인물들의 기록이다. 이러한 통념에 독일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반문을 제기한다. 그의 저서 『위대한 패배자』는 경쟁에서 밀려난 패자들의 기록이다. 슈나이더는 그들의 패배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했으며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이뤄낸 업적을 배제한다면 현재의 역사가 성립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역사서로 손꼽히는 『사기』는 승자의 모습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그리고 『위대한 패배자』는 패자의 어떤 면에 주목하고 있을까? 


 시체를 채찍질한 승리자들, 감상에 치우친 판단을 내린 패배자들
 『사기』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열전(列傳)’이 단연 백미로 꼽히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열전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주로 국가의 명재상이나 명장들이 다뤄진다. 즉 치세와 전쟁에 있어서 뚜렷한 공적을 남긴 사람들이 열전의 주인공들이다. 춘추전국시대와 초한쟁패기의 영웅들이 열전에 대거 등장한다. 중국사에서 극히 혼란스러웠던 시대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는 전쟁에서 처음으로 섬멸전을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열전에 수록된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어느 전투에서 몇 만 명을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기』의 기록만 참고하더라도 그가 참살한 적군의 수는 약 90만 명에 이른다. 백기는 조나라와의 전투인 장평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이유로 포로 40만 명을 생매장했다.
이밖에도 『사기』에 기록된 승자들의 인생은 죽음과 죽임의 연속이다. 초나라의 정치가였던 오자서(伍子胥)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에게 죽자 이웃나라인 오나라로 건너가 권력을 잡는다. 오자서는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키고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낸 뒤 300여 차례 채찍질을 했다. 또한 월나라 왕 구천(句踐)은 원수에게 자신의 아내를 첩으로 바치면서까지 복수를 꾀했다. 백기와 오자서, 그리고 구천은 모두 하나의 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개인들이다. 특히 구천의 집념과 오기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진다. 그들은 범인의 시각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냉혹함과 비정함을 갖고 있다.
반면 『위대한 패배자』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에게는 승자 특유의 냉정함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온 트로츠키는 패배자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제정 러시아를 무너트린 혁명의 주역이었지만 정치적 권모술수에 능하지 못했기에 그는 경쟁자였던 스탈린에 의해서 추방되고 살해당한다. 후계자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됐던 레닌의 장례식에 불참한 트로츠키는 그 이유를 단지 “혼자 머물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전형적인 패자의 속성’이라 말한다. 전략적으로 권력화 작업을 추진 중이었던 스탈린에 비해 그의 사고는 너무나 감상적이었던 것이다.


 승자의 유전자와 패자의 유전자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는 짧은 순간에 결정난다. 위진남북조시대의 군벌이었던 조조와 원소에게는 관도대전이, 태평양 전쟁의 미국과 일본에게는 미드웨이 해전이 그 순간이었다. 승패와는 관계없이 이렇게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 무대에 오르는 데만도 초인적인 노력과 역량이 요구된다. 그러나 역사에는 태어날 때부터 승자였던 사람이 있다. 『사기』의 한 부분인 ‘본기(本紀)’에 수록된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본기에는 전국을 제패하고 왕좌에 올랐던 인물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한고조 유방처럼 자수성가한 인물도 있으나 그 뒤를 잇는 한나라 황제들은 유방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본기에 저술돼 있는 문제(文帝)와 무제는 각각 전한의 기틀을 닦고 전성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과연 이들이 황실의 자손이 아니라면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그와는 반대로 뜻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희생했으나 패배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대전기간 중 튜링은 영국 첩보부 산하의 정부암호학교에 들어가 독일군의 암호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종전 직후 튜링은 대영제국 공로훈장을 서훈 받았다. 그러나 1952년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법원의 판결에 의해 1년간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등의 강제치료를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먹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대에서 튜링은 처음부터 패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승리와 패배를 심판하는 역사
 승자의 이면은 승리의 영광에 가려 감춰지곤 한다. 에디슨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니콜라 테슬라를 철저하게 매도했다. 칭기즈 칸은 몽골제국을 완성하기 위해 의형제였던 자무카를 처형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디언은 말살됐다. 반면 초패왕 항적은 유방에게 패해 자결했지만 제왕의 기록인 본기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고 있다.
오히려 악행으로 인해 이룩한 업적이 가려지는 경우도 있다. 진시황은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했지만 분서갱유와 같은 폭정을 일삼아 업적은 빛바랬다. 무결한 승리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으며 반드시 동정 받아야 할 패배 또한 없는 것이다.


김홍진 기자 bj2935@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