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하(국제관계학과 교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다문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됐다. 다문화는 의미상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어 혼선을 야기한다. 하지만 어느덧 다문화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한국 내 체류하는 외국인 인구가 2011년 12월 말 기준으로 약 140만 명, 즉 한국 전체 인구의 약 3%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숫자를 넘어서 대중매체에 통상적으로 재현되는 농촌의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바야흐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진행된 이주노동자 유입, 재중동포의 국내 노동시장 유입,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급증한 결혼이민과 같은 다양한 이주패턴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처음으로 다문화적 현실이라는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그간 이민 수용국으로서 한국은 이민자들과 갈등하기보다는 이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재중동포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에서 나타나듯 현재 국제이주는 더 이상 연민으로 덮기엔 한계가 있는 복잡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민자 인구가 증가하면서 갈등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민자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선’긋기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선을 그으며 살아간다. 출신 지역, 학교, 소속 등 선명한 선 안에 거주함으로써 우리는 심리적 안도감과 안정된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한다. 아마도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선은 민족, 국민일 것이며, 우리와 구분된 존재들을 선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우리는 보다 단일한 우리가 되고, 경계에 걸쳐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국제이주로 인한 이민자 집단의 증가는 계속 선을 지워갈 것이고, 이에 대해 주류 사회가 선명한 선을 그리려한다면 이민자들과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다면 심화되고 있는 다문화적 현실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다문화적 감수성이다. 즉, 선을 넘나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대학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에 나감으로써 선 밖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입장이 된다면 그들을 다른 민족, 비국민이 아닌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인간으로 대하는 역지사지의 감수성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 체험 외에도 우리는 선 안에서 선 밖을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서경식은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이라는 책에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없어지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상상력도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재일조선인’이라는 단어를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 이주자,’ ‘연변 조선족’으로 바꾸어”보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경계 밖으로 나가보거나, 경계 안에서 선 밖의 사람들을 사유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보고 다문화적 감수성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복잡해지는 다문화적 현실에 올바르게 대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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