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한 장 만드는 데 4천 만원 필요해…
‘해외연수’ 기재란 하나 가격은 천만 원…


지난주 유명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로 ‘SK 채용, 현대카드 채용’ 등 각종 기업의 채용이 올라왔다. 국내주요기업의 신입사원채용 접수 마감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캠퍼스 내에도 각종 기업의 채용 포스터와 플래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야흐로 취업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이와 더불어 취업에 성공한 사람의 스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삼성 채용’을 검색하면 ‘삼성 채용 스펙’이 연관검색어로 뒤따른다. 여기서 ‘스펙’이란 입사 시에 인사평가에 반영되는 각종 지표를 의미한다. 취업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구직자들의 노력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스펙인 셈이다.

▲ 캠퍼스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채용 플래카드, 하반기 취업 시즌이 돌아왔다.

스펙 경쟁, 좁은 취업문 때문…
취업에서 스펙이 중요해진 이유는 ‘좁아진 취업문’때문이다. 과거 대학진학률이 낮았던 시절, 대학 졸업증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었던 풍토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했다. 대학진학률이 90%에 이르고 대졸 실업자가 양산됐다. 더 이상 대학 졸업증으로는 취업이 보장되지 않게 된 대학생들은 대학 시절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스펙을 쌓아나갔다. 기업들도 객관적 지표로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스펙을 중요요소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취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취업 준비생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됐다. YBM시사 측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학생의 평균 토익(TOEIC) 점수는 2000년 552.9점에서 2011년 640점으로 올랐다. 11년 사이에 87점이나 오른 것이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신입사원 중 800점 미만의 토익 점수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공인영어성적이 그리 중요하지 않던 과거를 생각하면 입사 지원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구직자들은 입사를 위한 절대적인 기준을 충족하기보다는 경쟁자보다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남보다 더 나은 스펙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일정 수준을 넘기기만 하면 스펙이 업무능력과 비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과열된 스펙 경쟁이 의미없는 ‘과잉 스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값비싼 스펙가격 대학생이 감당하기 힘들어…
지난 5월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대학졸업생 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스펙을 얻기 위해 1인 당 4,269만 원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내용은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학력·어학·자격증·해외연수 등의 기재란을 채우기 위한 비용이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펙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학 등록금으로 평균 2,802만 원이다. 영어 실력향상을 위해 쓰는 비용도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43%는 해외연수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해외연수를 위해 지출한 금액은 평균 1,108만 원이었다. 응답자의 89%가 토익 등 자격증에 응시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고 응시료로 지출한 금액은 평균 59만 원이었다. 학원 수강료와 교재비 지출 등 사교육에 쓴 비용은 평균 112만 원으로 집계됐다. 취업준비생 이지혜(25)씨는 “지난 방학 동안 취업을 위해 학원 두 곳을 다녔다. 월 40만 원의 학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며 대학생이 스펙을 쌓기 위해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토로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승현 정책실장은 “학교생활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펙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지원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취업과정에서 스펙이란 요소가 강화되는 것은 계층 간의 양극화를 유발할 수 있다”며 스펙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가 사회전반의 문제로 확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시간도 부족해…
과도한 스펙 경쟁이 진로에 대한 충분한 고민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지적도 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인 20대지만 곧 들이닥칠 취업 문제가 진로에 대한 고민을 ‘배부른 고민’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취업준비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진로설정이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대학 4년생 2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9.8%가 진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40.2%는 아직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전체 응답자의 83.8%가 진로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거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승현 정책실장은 “20대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관심과 진로를 찾아야 할 시기”라며 “과도한 경쟁은 닥치는 대로 스펙을 쌓는 데 청춘을 소비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격증 어학연수 등 스펙을 늘리기 위해서는 학교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을 해야 한다. 그것 자체로 이미 대학생활에 대한 여유가 부족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대학의 정규교육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스펙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스펙경쟁의 양상은 그것을 벗어난 부분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의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글·사진_ 장국영 기자 ktkt1111@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