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형, 요참형” 등 옛부터 잔혹한 형벌 많아
인권 중시하는 현대에는 비인간적 형벌 사라져


2년 전에 있었던 ‘조두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8월,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흉악범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성 범죄자를 대상으로 약물을 투여해 성호르몬을 감소시키는 화학적 거세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고 이른바 ‘고환제거법’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권 문제로 찬반 대립이 뜨거운 상태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형벌의 종류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이 존재했었다. 이러한 형벌은 어떻게 시작됐고 또 형벌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 칼을 쓴 채 처벌을 기다리는 죄수들

형벌의 기원은 복수심
형벌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인간이 무리지어 살기 시작한 시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형벌’이라는 말은 14세기에 등장한 것이며 그 이전에는 비난이나 질책을 의미하는 ‘Verweis’가 형벌의 의미로 쓰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형벌의 기원은 가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복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성문화된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함무라비 법전의 특징은 보복주의로 무거운 형벌 중심의 보복원칙이 민법, 형법, 상법 등 여러 면에 걸쳐 규정돼 있다. 예컨대,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때렸을 때에는 그 손을 자른다. 자유민의 눈을 뺀 자는 그 눈을 뺀다. 노예가 자유민의 뺨을 때리면 그 귀를 자른다”는 등 보복 원칙이 뚜렷하다. 함무라비 법전은 최초로 성문화됐다는 데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불평등의 원칙으로 계급에 따라 형벌이 따로 결정됐고 고의와 과실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과실에 의한 살인과 고의로 저지른 살인을 동등하게 처벌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가장 오래된 법으로 고조선의 ‘8조법’이 있다. 고조선 사회에서는 일찍부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불문법으로 8조법이 행해졌다. 그러나 현재는 8조법 중 3개 조항만이 전해지고 있다. 3개 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물로 배상하거나 50만 전으로 배상한다,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이 3개 조항들을 통해 개인의 생명을 존중했던 고조선 사회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형벌 집합소, 중국의 형벌
기요틴과 교수형.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인 형벌이었던 서양에 비해 동양, 특히 중국의 형벌은 그 종류와 잔인함에 있어 서양을 능가한다. 중국의 형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그 잔혹성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잔인한 중국의 형벌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황제의 권력욕에 기인한다. 진시황제는 무려 72만 명의 남성을 멋대로 거세했다고 전해지고, 청나라는 한족과의 마찰로 한족의 주요 지식인들에게 잔인한 방식의 사형을 부과했다.

▲ 거열형이 집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된 중국의 대표적인 잔혹한 형벌로 거열형이 있다. 거열형은 죄인의 두 팔과 두 다리 및 머리를 각각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에 묶어 놓고 채찍질로 마소를 달리게 해 머리와 사지를 찢는 형벌이다. 거열형은 진·한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뒤 수·당이 율령제도를 실시해 오형제도(태·장·도·유·사)를 채택함에 따라 법전 상에서 없어졌다. 거열형은 대역죄인과 같은 중죄인에게 내려지는 무거운 형벌이었다. 거열형에 처해져 목숨을 잃은 대표적인 인물들로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이 있다.

▲ 살점을 발라내는 능지형

사형수의 신체를 조각내어 죽인다는 공통점에서 거열형과 종종 혼동되는 능지형이 있다. 거열은 사지를 말이나 소에 묶고 달리는 방법으로 신체를 찢어죽이지만 능지는 사형수의 신체를 작은 조각으로 하나하나 잘라내는 방법으로 죽인다는 것에서 그 차이가 있다. 능지는 원래 경사가 완만해 천천히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구릉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변해 사람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형벌의 이름이 됐다.

능지의 다른 말로 ‘살천도(殺千刀)’가 있는데, 천 번 칼질해 죽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실제로 명나라 환관 유근은 6천 번까지 난도질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능지형은 고대 중국에서 청대까지 걸쳐 시행됐고 사형 중에서도 반역 등의 중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내려진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다. 우리나라는 고려 공민왕 때부터 이 형벌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후 조선 초기에도 행해졌으며, 특히 연산군·광해군 때 많았고 1894년이 돼서야 완전히 폐지됐다.

궁형은 동양의 대표적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에게 내려진 형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형벌은 남녀의 생식기에 가하는 형벌로서, 남성의 경우 예리한 칼로 생식기를 제거하고 여성은 바늘로 질을 꿰매 자손생산을 불가능하게 했다. 궁형은 수나라 문제 때 처음 폐지됐지만 그 뒤로도 중국에서 종종 시행됐다. 이 형벌은 주로 풍기문란 또는 성폭행을 범한 사람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문헌을 통해 이 형벌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거세는 천지의 이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국법으로 수용한 적은 없다.

▲ 허리를 자르는 요참형

이외의 유명한 형벌들로는 요참, 구오 등이 있다. 요참형은 허리를 잘라 죽이는 방식인데, 허리를 자른다고 해도 장기의 대부분이 상반신에 있으므로 상당 시간이 지나야 사형수의 숨이 끊어진다. 명나라 때 ‘방이유’라는 사람은 허리가 잘린 후에도 팔로 기어 자신의 피로 저주하는 글을 쓰고 죽었다는 괴기한 이야기가 있다. 구오형은 머리, 팔, 다리, 귀 등을 자르고 눈알을 파내는 형벌이다. 구오형에 관련해서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후의 일화가 있다. 여후는 유방이 죽은 후 유방의 총애를 받던 척부인을 잡아 다리, 혀, 귀 등을 자르고 눈알을 파낸 뒤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인권에 위배되는 거세형 올바른 처벌 방법에 대한 논의 필요해
근대 이전의 형벌은 그 종류의 다양함, 방법의 잔인함, 피해자의 비참함 등이 그 특징이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중시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잔혹한 형벌이 빈번했지만 근대화를 통해 사형과 같은 혹형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에는 인권을 중시하는 세계적인 추세로 인해 비인간적인 형벌들이 거의 없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존속되기는 하지만 수년간 집행되지 않은 것도 인권 중시 사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거세형의 등장은 아이러니하다. 거세형은 기본적으로 인권에 위배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거세형은 최근 계속되는 경악할 만한 성 범죄들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제기됐지만 찬반 논쟁이 뜨겁다. 거세형 찬성 측은 성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고, 반대 측은 인권과 효율성을 이유로 든다. 이렇게 찬반 의견이 난립하는 가운데 성 범죄자들에 대한 올바른 처벌 방법은 과연 무엇일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조원우 기자 alwayskinder@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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