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그 애가 말합디다.
“하늘은 높고 푸른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어 죽이겠소.
-박지원의 『연암집』 중 <답창애지삼(答蒼厓之三)>의 전문


『연암집』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문호인 박지원의 시문집이다. 총 17권 6책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내용은 대개 짤막한 에피소드나 박지원 본인의 수기, 사색 등을 담고 있다. 형식과 구성면에서 동양의 탈무드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위 글은 『연암집』에 수록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인 <답창애지삼(答蒼厓之三)>의 전문이다.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중심의 교육 방식을 생각해볼 때, 이제야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한 연암집 속의 아이는 기껏해야 대 여섯 살쯤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사고는 대학자였던 박지원을 놀라게 할 정도로 날카롭다. 위의 글에서 아이가 ‘배움’을 대하는 자세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하늘을 의미하는 글자에 푸름이 없다는 것, 곧 본질이 없다는 진리를 매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가진 삶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무런 비판 없이 누군가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가?

아이는 사소한 글자 하나에도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미디어가 무한히 떠먹여주는 정보에 의해 정작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지식의 상태는 고도비만이 됐을지언정 사고의 건강함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선과 같은 커다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날이 새고 나면 수십 개의 새로운 흑색선전들이 쏟아진다. 비난과 폭로가 헤집고 난 자리에는 변명과 해명이 뒤따른다. 그 중 무엇이 사실인지 분간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비판적 태도에 있다. 글자에 푸름이 없다는 것을 짚어낼 수 있는 힘, 매일매일 새로운 이슈를 접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김홍진 기자 bj293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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