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소통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의 매체들이 쌍방 간의 소통이 가능한 매체로 이미 전환되었거나 급격히 전환되면서 우리의 의식구조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옛날 같으면 스스로 이해하고 용납할 것이 당연시 되었던 부분도, 이제는 보듬고 소통하여 공감하지 않으면 조만간 큰 곤경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불소통은 단순히 부정적 평가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정서가 더욱 소통에 민감해져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지 569주년이 된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단순히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한글을 익혀 백성들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펼 수 있도록 하려는 바로 그 ‘마음’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 당대의 탁월한 음운학자로서 한글창제를 반대하는 뭇 신하들과 당당히 공론을 벌여 마침내 설복시킨 힘도 소통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을 몸소 읽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세종대왕은 죄됨을 모르는 자를 벌하는 것은 조삼모사와 같다고 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율령의 대강이라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쉬운 한글로 옮겨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집현전의 학사들과 더불어 한글 창제에 더욱 박차를 기하였다고 하니, 이는 당대의 절대주의 서양에게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었다.

소통의 키워드는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는 ‘마음’에 있음을 성군께서는 몸소 가르치셨는데 아직도 우리는 조선의 우부우부(愚夫愚婦)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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