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권농정책의 상징적인 장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하며 ‘전농’ 의미 잊혀져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전농이라는 이름은 친숙하다. 우리대학 정문을 나와 조금만 가다보면 전농초등학교, 전농뉴타운, 전농동 사거리 등 전농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장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농은 예, 의식을 뜻하는 전(典)과 농사를 뜻하는 농(農)으로 구성돼 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의식 및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인 듯하다. 그렇다면 전농동의 전농은 어떻게 붙여진 이름일까?

그 이유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선농단(先農壇)에서 찾을 수 있다. 선농단은 선농제를 거행하던 제단이다. 선농제는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행해진 제사로, 농사의 삼신(선농, 중농, 후농) 중 선농을 모시는 제사다. 선농은 농사짓는 법을 처음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 선농제를 했던 선농단

조선왕조는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농민들의 생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선농제를 국가의 중요한 제사로 삼았다. 조선의 임금은 친히 경칩이 지난 후 첫 해(亥)일에 지금의 전농동 근처에 있는 선농단을 찾아와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낸 후, 왕은 적전에서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백성들 앞에서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의식을 행했다.

적전은 왕이 경작하는 토지다. 이 토지에서는 왕이 직접 경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주변 농민들도 경작 또는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적전에서 생산한 곡물은 종묘 제사와 또 다른 제수로 썼고, 여분의 곡물은 구휼에 쓰이기도 하고 의약청·산실청 등 각종 관청 및 종친, 공신을 포함한 고위 벼슬아치들의 장례비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농에 대해 "종묘·사직·산천 백신(百神)의 제미(祭米)를 제공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렇게 임금이 선농제에 바칠 곡식과 친경행사를 거행한 적전의 지명이 전농이었으며 오늘날의 전농동이 됐다.

▲ 전농동에 위치한 청량리역

현재 전농동은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서울의 교통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역은 중앙선·경원선·경춘선의 시발역이고 지하철 1호선과도 연계돼 있다. 또한 청량리 환승센터에서는 서울의 도심 뿐만 아니라 동북부 지역,  동남부 지역으로 가는 버스들을 이용할 수 있다.

▲ 선농단 옆에 있는 선농제향나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사람들은 전농동의 ‘전농’이 가지는 의미를 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농동은 조선시대에 조선의 농본 정책의 중심지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교통의 요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길을 걷다 전농동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마주친다면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전농이 가진 역사와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_ 김현우 수습기자 hiun91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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