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이야기를 영상세대의 입맛에 맞게 바꿔
원작을 적절히 변형한 각색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해


소설이 원작인 영화들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올해도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심심찮게 제작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공지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도가니’는 관객 수 460만 명을 넘겼고, 김려령의 성장소설을 영화화한 ‘완득이’는 530만 명을 동원했다.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화차’는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최초로 25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런 인기의 이유는 영화의 시나리오가 원작 소설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옮겨진 소설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원작의 명성과 충성스러운 독자들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원작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원작의 이미지가 각인돼 원작과 다른 내용으로 영화가 전개될 경우, 이를 부정적으로 보기 쉽기 때문이다.

올해 4월 개봉했던 ‘은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열풍의 시작에 있었다. 소설 ‘은교’와 영화 ‘은교’를 비교해보며 영화화의 장점과 어려움에 대해 알아보자.

▲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은교의 모습.

영상이 가진 막강한 힘을 얻다

영화 초반부, 의자에 앉아 있는 은교의 모습은 눈부시다. 소설에서 3페이지 가량에 걸쳐 묘사된 은교의 모습은 스크린 안에서 생기를 내뿜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면 ‘내가 생각한 은교의 모습이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 속 이적요처럼 은교에게 빠졌을 것이다.

그 이유가 단지 은교 역을 맡은 배우가 매력적 이어서였을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영상이 가진 힘이 활자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다.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가 영화관을 찾는 주 고객층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관념적인 소설보다 영화가 더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각색의 필요성과 어려움

영화 한 편은 보통 두 시간 가량, 길면 세 시간 정도다. 이 시간은 삼사백 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의 내용을 온전히 담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소설 내용의 축소와 생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설 속 중요한 사건이 빠지거나 인물의 특성이 잘못 변한다면 이야기의 이해가 힘들어지고 소설을 읽은 관객들에게 질타와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원작이 유명하고 작품성이 높을수록 더욱 커진다.

각색이 신중히 이뤄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각색이 영화의 흥행여부와 작품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각색된 이야기가 관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 화차의 감독 변영주 씨는 한 강연회에서 “원작의 독자가 기억하는 것은 책을 읽었던 순간이다. 그것을 따라가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며 각색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영화의 각색은 배경, 인물, 사건 등 다양하게 이뤄진다. 그 중 인물의 변화를 은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작 소설에서 은교의 모습은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적극적으로 주체적인 행동을 하진 않는다. 은교는 이적요나 그의 제자 서지우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속 은교는 능동적이다.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하고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은교의 감독 정지우 씨는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에서의 섬세하고 소극적인 은교를 조금 더 능동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이를 통해 두 남자 사이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이런 선택이 은교라는 캐릭터를 살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이적요나 서지우의 캐릭터는 평면적으로 변했다. 영화에서 두 인물은 은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의 모습이 강조돼 원작에서는 친밀했던 스승과 제자의 애증관계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적요가 원작에서 가졌던 카리스마가 실종됐다는 것도 독자들의 불만 중 하나다. 은교의 원작자 박범신 소설가는 한 방송에서 “영화가 비교적 소설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표현된 이적요라는 남자의 생애는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gep44@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