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5일부터 7일 그리고 12월 19일. 각각 우리대학 학생들의 대표를 뽑는 총학생회 선거와 국민의 대표를 뽑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학생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각 후보를 평가하고 어떤 후보를 뽑을지 고민한다.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이다. 공약은 유권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정책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공약은 영국에서는 매니페스토(manifesto), 미국에서는 플랫폼(platform), 독일에서는 발프로그람(Wahlprogramm)으로 불린다. 그러나 일반적인 공약과 영국의 매니페스토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기존의 공약이 후보들의 현실가능성 없는 소망 목록에 그쳤다면 매니페스토는 당선 후 시행할 정책의 기간, 재원, 우선순위 등을 구체적으로 명기한 공적인 약속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적 차이 때문에 독일, 일본 등에서는 매니페스토를 도입하면서 기존에 쓰이던 공약과 의미를 구분 지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매니페스토는 발상지인 영국부터 최근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된 한국까지 현대 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영국,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쿵짝 쿵짝~ 기호 ~번!’ 매미 소리로 여름이 왔음을, 귀뚜라미 소리로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요란한 노랫소리와 확성기 소리를 통해 선거가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매니페스토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유권자들이 가판대마다 놓인 매니페스토를 사들고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후보의 공약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영국의 정당들은 하원 의원 선거일이 다가오면 80~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매니페스토를 내놓는다. 이 매니페스토의 인기는 엄청나서 수십만 부에 이르는 매니페스토가 선거 기간 동안 팔려나간다. 덕분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홍보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선거가 인물 중심의 인기투표에 가깝다면 영국은 각 정당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후보들은 방문, 전화, 토론회 등 비교적 조용한 방법으로 소속 정당의 매니페스토를 설명하면 그만이다.

영국의 매니페스토는 1834년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거짓 공약을 내세우지 않겠다는 로버트 필의 ‘탬워스 선언’ 이후 관습으로 정착됐다. 18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매니페스토의 효시는 1997년 총선에서 처음 나타났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매니페스토를 통해 공약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예를 들어 노동당은 당시 청년 실업의 해결 방안으로 ‘25세 미만, 25만 명 청년 고용’이라는 공약을 제시했다. 또한 잉여이익을 낸 기업에게 1회 과세함으로써 재원을 충당한다는 이행 방안까지 제시했다. 매니페스토에 힘입어 노동당은 총선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면서 크게 승리했다.

 
일본, 55년 체제의 종식 ‘매니페스토’로 이루다

2009년 8월 일본에서는 민주당이 중의원 의석 총 480석 중 308석을 차지하며 제1여당이 됐다. 이는 55년간 이어져온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실질적으로 종식한 것으로 평가받는 사건이었다. 1993년 자민당 이외의 정당들이 연합해 정권을 잡았던 일시적 정권 교체와 달리 선거에 의해 여당과 야당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정치에 큰 파란을 몰고 온 민주당의 집권에도 역시 매니페스토가 있었다.

일본의 매니페스토는 영국의 정당 매니페스토와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장이 중심이 돼 만드는 로컬 매니페스토에서 비롯됐다. 2003년 1월 당시 일본 미에현 지사였던 기타가와 마사야스는 당해 4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에게 구체적인 기한, 재원 등을 명시한 매니페스토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에 동조한 일부 후보들이 매니페스토를 내놓기 시작했고 이후 이어진 2004년 참의원 선거와 2005년 중의원 선거를 통해 매니페스토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앙 정치까지 퍼진 매니페스토는 비로소 인물 중심의 선거를 정당 정책 중심의 선거로 탈바꿈 시켰다. 2009년 선거가 그 단적인 예다. 자민당을 이끈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내세웠던 개혁 정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 국민들은 개별 정치인을 통한 개혁이 불가함을 깨달았다. 결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열망을 실현시켜줄 정책과 정당에 관심을 갖게 됐고 민주당은 이를 반영한 매니페스토를 작성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한국, 유권자가 만드는 공약이 진정한 매니페스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책·공약 알리미(party.nec.go.kr) 사이트에 들어가면 18대 대선에 출마할 예비 후보자들의 핵심 공약 10개가 우선순위에 따라 나열돼 있다. 또한 각 공약에는 목표, 기간, 재원 조달 방안 등이 기재돼 있다. 앞서 설명한 매니페스토의 요건들이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이러한 매니페스토가 가능해진 데는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시민단체 중심의 매니페스토 운동의 역할이 컸다.

우리나라는 정당 중심의 영국, 지방자치단체장 중심의 일본과는 달리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됐다. 매니페스토 운동에 힘입어 2007년에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공약집을 작성, 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점은 많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지금까지의 공약은 후보와 몇몇 전문가가 만드는 하향식 공약이었다. 진정한 매니페스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와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만들어지는 상향식 공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_ 문광호 기자 rhkdgh910@uos.ac.kr
사진_ 영국 노동당 매니페스토 출처
일본 민주당 매니페스토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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