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춘(글쓰기 센터 ‘발표와 토론’ 담당 교수)
‘아! 이번 토론에서 발렸어!’라는 말을 학생들로부터 적지 않게 듣는다. 학생들은 토론에서 상대편에게 처참하게 참패당했다거나 준비한대로 되지 않아 망했다는 솔직한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다. 물론 토론은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편과 대립적 관계로 출발하는 터, 토론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검객처럼 현란한 칼솜씨로 상대를 한 칼에 제압하겠다는 생각을 품는 것도 당연하겠다.

하지만 학교의 교육토론도, 정치판에서 행해지는 각종 토론회도 승자가 기쁜 승전가를 부르는 것이 그 목적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 삶에서 해결해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 토론거리가 된다. 토론의 존재이유는 지혜를 모아 문제 상황을 돌파해 나아가는 출구를 찾으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귀를 막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견을 듣는 즐거운 과정이자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생산적인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토론의 출발이자 근간이 되는 점들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만든 마음의 창에 보여 지는 세상만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자신의 욕망과 감정의 프레임으로 짜여진 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사실의 세계가 아닐 것이다. 편견을 버리고 정확한 판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객관성’이라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귀를 여는 것이다. 상대의 주장이 무엇인지 듣지 않고 비난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상대는 계속 고집을 부리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비난을 통해 상대가 마지못해 수긍한다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마련이다. 상대의 마음이 상한다면 문제의 해결보다는 반목이 더 심해질 것이다. 귀를 열어 관심을 갖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대화자들은 스스로 생각을 풀어가는 가운데 자기 안의 모순과 문제를 깨닫게 된다. 설득과 소통에서 ‘듣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셋째, 생각을 여는 질문,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은 생각을 여는 출발점이 된다.  질문은 상대방의 생각을 끌어내는 역할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어느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를 그 방향을 정해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던져진 질문에 따라 관심의 방향이 바뀐다. 물어지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답하면서 생각의 길을 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는 ‘질문’, 그것이 우리가 얻게 되는 대답의 품격을 결정한다.

학기 중반이 넘어가면 학생들의 본격적인 토론 수업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겠다는, 상대팀을 이기겠다는 생각을 품고 모두 토론의 고수가 되기를 꿈꾼다. 물론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이 토론 참여의 좋은 동기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생각이 전부가 아니길 바란다. 진정한 고수는 승리를 향한 검객의 포스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의 고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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