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학생이라면 꼭 한 번 들어야 하는 수업인 <글쓰기> 강의. 우리대학 글쓰기센터에서 객원교수로 재직 중인 진수미 시인은 수년 동안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시인 진수미보다는 교수 진수미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진수미 시인은 올해로 등단 15년째를 맞는 베테랑 작가다. 시인 진수미가 말하는 시의 미학과 글쓰기의 즐거움, 그리고 교수 진수미가 말하는 대학생과 문학에 대해서 들어보자.
-편집자 주-

Q. 1997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하셨으니 시인으로서 활동한 시간이 벌써 15년째로 접어드시네요. 처음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셨나요?
A. 저는 80년대 마지막 학번이에요. 민주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시점이지만 여전히 권위적인 분위기가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죠. 열렬했던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던 선배들도 제 눈에는 아버지 세대와 큰 차이가 없어보였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나’를 주장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시 창작은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죠.

 
Q. 왜 문학의 다른 장르인 소설이나 희곡이 아닌 시를 택하셨나요?
A. 시대적인 환경을 이야기한다면, 80년대는 시의 시대였어요. 시는 소설보다 적응력과 전파력이 빠른 장르예요. 소설을 쓰는 데에는 노동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는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한 장르지요. 개인적인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면, 저는 마침표를 찍는 것이 체질적으로 너무 싫었어요. 시는 문장부호 없이도 연행 나눔을 통해서 제멋대로 통사구조를 바꿀 수 있는 매력이 있어요.

Q. 대학재학 시절에 시 창작 공부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동기들 중 60~70%가 시를 썼어요. 학과에만 창작 동아리가 4개가 있었고 외부에서도 청문회 등의 활동이 활발했죠.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작품으로 참여를 했어요. 창작을 할 수 없을 때는 4.3 항쟁과 4.19 혁명이 있었던 4월이 오면 학생회관 등에 관련 시를 찾아서 전시를 했었죠. 모두가 한 번쯤은 창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쓰기보다 읽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2학년 때 학과 논문 발표회에서 이성복 시인에 대한 논문과 평문의 중간 정도 되는 장문의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죠. 도서관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서 우리 세대에서 10년 이내에 등단했던 최승자, 황지우 등의 시집을 읽고 토론을 했어요. 그런 일이 흔했던 시대였죠.

Q.‘시작(詩作)’에 있어서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저는 등단 초기에 여성주의적 맥락 안에서 주목을 받았어요. 이런 지향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요. 한 후배 남자 시인이 제게 “누나는 무엇을 써도 섹슈얼한 쪽으로 해석되게 해?”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제가 쓴 시는 통제하고 조작한 것이 아니라 내뱉는 거예요. 일단 쏟아놓고 질서를 잡기위해 정리를 하는 거죠. 즉 수정 과정에서 의도가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쏟아 놓은 것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섹슈얼하고 젠더적인 코드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학부 시절의 강의와 분위기의 영향도 커요. 학부 때 이동하 교수님께서 문학이론수업에 반드시 페미니즘을 포함시키셨거든요. 또한 등단 이후에 시인 선생님의 추천으로 ‘여성 예술가 워크숍 모임’에 나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어떤 분이 “저는 성매매가 전문이에요”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까 성매매를 주제로 논문을 쓴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우연한 계기와 경험 등에 의해서 지향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Q. 대학 교육일선에 계신 시인으로서 요즘의 대학생과 문학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A. 거리가 멀죠.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이제는 아방가르드(전위)가 아니라 아리에가르드(후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어요. 문자 매체는 더 이상 아방가르드가 아니에요. 피 끓는 젊은이들이 아방가르드에 매혹되는 건 당연하죠. 피가 터지더라도 전위에 서고 싶다면 서야죠. 그러나 그 전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후방에서 쌓아올린 전투력이 필요해요. 그 내공 쌓기에 문자처럼 좋은 게 없어요. 수없이 패배해도 자신을 성찰하고 싸움의 의미를 찾는 힘이 내면화돼 있다면 그 사람은 불사조라고 할 수 있어요.
대학생들이 시를 안 읽는 이유는 오늘날의 문화 환경에서 기인한 게 많아요. 즉각적이고 개방적이고, 가벼우면서도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매체가 있다면 그쪽으로 쏠리게 되는 게 자연스럽죠.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한국은 ‘문(文)’중심의 나라이기 때문이죠.

Q. 올해 두 번째 시집 『밤의 분명한 사실들』을 출간하셨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시 한 편을 소개해주세요.
A. 이번 시집에서 <겹겹의 당신>이라는 시가 있어요. 마침표가 많은 편인 시예요. 타자에 대한 포용력, ‘나’라고 하는 존재들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죠. ‘우리’라고 하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존재와 타자의 겹침과 만남, 이런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Q. 시를 쓰고자 하는, 혹은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선배 시인으로서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언어와 주체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견뎌야 해요. 손에서 책을 놓지 마세요. 그리고 쓰세요. 생각만 하지 말고요. 혼자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세요. 훨씬 힘이 날 거예요. 등단 후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에콜(학파)’이 되겠죠. 동지가 있으면 문단 생활도 든든해집니다. 또한 혼자만 간직하기보다는 공유하세요. 비판과 격려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아야죠.


정리_ 김홍진 기자 bj2935@uos.ac.kr
사진_ 김태현 기자 gep44@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