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와 비교해보는 우리나라 테마여행

제주도는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서, 해방 후에는 요양지로서,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난처로서의 역사가 숨 쉬는 공간이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흔적이 제주도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흔적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제주도를 거쳐간 화가들의 미술작품이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새겨진 구절이다. 이 글귀와 더불어 세한도에는 흰 바탕에 잣나무 세 그루와 늙은 소나무, 인적이 끊긴 빈 집만이 최소한의 먹으로 표현돼 있다. 흑백으로 구성된 고요한 이 장면에서는 이상적에 대한 김정희의 마음이 드러난다.

이상적은 김정희의 제자로서 김정희가 지위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의리를 다한 인물이다. 덧붙여 절제된 붓질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고고했던 그의 선비정신까지 느낄 수 있다.

▲ 세한도를 재현해 놓은 제주추사관
2010년 세한도의 빈집을 그대로 재현해낸 제주추사관이 문을 열었다. 제주추사관은 추사 김정희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됐다. 제주추사관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의 모티브가 된 <세한도>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제주추사관 뒤편에는 김정희가 유배시절 살았던 생가가 있다. 그가 직접 심었다는 연노란 수선화를 사진에 담아내려는 사람들로 인해 입구가 막히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국전쟁 시절의 화가로는 이중섭을 꼽을 수 있다. 이중섭이 제주도에 살던 당시에 그린 그림 역시 쓸쓸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김정희가 자신의 감정을 흑백을 통해 드러냈다면 이중섭은 이를 색채를 통해 표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중섭을 ‘소’의 화가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바다’의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일생동안 통영, 부산, 서귀포 등 바닷가 마을을 찾아다니며 바다와 일생을 함께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그의 생가에서는 모래알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는 서귀포시 자구리 해안의 하얀 물결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고를 못 이겨 떠나는 가족들을 붙잡지 못하고 홀로 서귀포 바닷가를 찾은 그에게 바다는 아름답지만 미워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바다를 나무판에 유채물감으로 담아냈다. 그것이 바로 이중섭 박물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서귀포의 환상>이다. 그림 속 소년들과 하얀 새들은 정답게 놀고 있다. 전반적으로 노란 계열의 색이 주를 이루고 있어 푸른 바다마저 정겹고 따스해 보인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풍요롭고 따뜻한 공동체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을 애틋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새를 타면서 놀고 있는 소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중섭이 그려놓은 바다는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이 바다는 그에게 ‘환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쓸쓸함이 느껴진다.

김정희에게는 혼자 이겨내야 했던 겨울로, 이중섭에게는 소박한 소망조차 이룰 수 없던 바다로 다가왔던 제주도. 당신에게는 제주도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따스한 햇살 속 돌담길을 천천히 거닐다보면 어느새 생각에 잠겨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제주도로 미술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 서귀포 자구리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이중섭 생가


글·사진_ 박지혜 기자 bc02013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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