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 그 때 보수동 한 편에 헌책방 하나가 들어섰다. 책을 살 돈도 사고 팔 책도 부족한 악조건이었지만 책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헌책방은 조금씩 활기를 띠었다. 헌책방은 점차 늘어났다. 사람들은 책방이 들어선 골목을 책방골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뿐이었던 헌책방은 오늘날 60여 개로 늘어났다. 새 책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헌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헌책이든 새 책이든 일반 서점보다 싼 가격에 책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옛날과 다르지 않다. 2010년에는 책방골목의 문화적 상징성과 역사성을 기념하기 위한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문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좁고 긴 골목에 들어서면 오래된 간판을 건 작은 책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책방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색깔과 크기의 책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것을 보면 기존의 대형서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고등학생들의 참고서, 대학의 전공서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헌책에 남아있는 옛 주인의 손때와 필기를 보면 그들의 삶이 종이를 통해 전해지는 듯하다. 많은 책 중에서 내가 찾던 책을 찾아내면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즐겁다.
서점들 사이에는 북카페들이 간간히 들어서 있다. 음료를 주문하기만 하면 책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고서적, 만화, 고양이, 어린이 도서 등 카페마다 각각의 테마가 있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카페 여기저기에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책을 읽는 연인들이 눈에 띈다. 구석에 쪼그려 책 속에 빠져들 것처럼 열중해서 책을 읽는 아이들도 보인다. 모두들 저마다의 가족, 연인, 친구와 행복한 여유에 빠져든 듯하다.책방골목의 끝자락에는 산복도로(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까지 올라가는 긴 계단이 있다. 그 사이에는 좁고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달동네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미국의 민요 <클레멘타인>을 연상시키는 한 편의 동화가 계단을 따라 가는 길에 스토리텔링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벽화에 담긴 아름다운 동화는 알록달록한 색채와 어우러져 거주자와 방문객 모두에게 동심을 선물해주고 있다.
지금은 굳이 직접 찾아가 헌책을 찾을 필요가 없는 시대일지 모른다. 새 책을 사는 데 큰 부담을 느끼는 시대도 아니거니와 인터넷 상에서의 헌책 매매 역시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는 사람들은 많다. 이곳에서는 책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고 새겨 나갈 수 있는 까닭이다. 노인에게는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소로, 청년에게는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장소로, 저마다의 다른 추억을 가득 담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당신도 부산으로 와 헌책의 냄새를 맡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_ 강민지 수습기자 raina_k@uos.ac.kr
강민지 수습기자
raina_k@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