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스페인에 가다 ②

 
세계적인 고전인 『돈키호테』의 명대사다. 스페인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돈키호테』는 세계의 고전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작품이다. 충실한 하인 ‘산초 판사’와 자신을 편력기사라 단단히 믿는 ‘돈키호테’, 그리고 그의 애마 로시난테. 그들은 스페인의 중부지방인 ‘라만차(La Mancha)’를 배경으로 돈키호테의 망상을 이루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발표된 지 4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스페인의 국민문학이자 근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 『돈키호테』.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늙은 기사의 쓸쓸한 뒷모습은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하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자취와 라만차 곳곳에 남아있는 로시난테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 라만차의 풍차마을 콘수에그라는 중세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돈키호테 마을’이다.

출발, 마드리드의 세르반테스

스페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세르반테스는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버스요금을 내거나 음료를 구입한 뒤 거슬러 받은 동전을 잘 살펴보면 세르반테스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에서 통용되는 유로화 중 10, 20, 50센트짜리 동전에는 세르반테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여행객은 어느새 세르반테스와 여정을 함께하는 셈이다.

스페인 제1의 국제공항인 바하라스 공항을 통해 수도 마드리드로 들어가면 시내 중심부에 우뚝 솟은 백색의 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세르반테스 기념탑이다. 마드리드 최대의 번화가인 ‘솔(Sol)’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스페인 광장에 있는 이 기념탑은 세르반테스의 서거 30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마드리드 시민들은 점심시간이나 해질녘이 되면 이곳 광장에서 세르반테스 석상 옆에 앉아 휴식을 즐긴다. 스페인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도 엿볼 수 있는 세르반테스의 모습이다.

스페인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이동해 스페인 국립도서관을 찾았다. 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스페인의 문화를 풍부하게 만든 여섯 위인의 석상이 도서관 앞을 지키는 모습마냥으로 서있다. 이 위인들 중 한 명이 바로 세르반테스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800여 권의 『돈키호테』 스페인어 판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국립도서관을 방문했다. 그러나 특별출입증이 있는 사람에게 한해서만 출입이 허용된다는 사서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국립도서관을 나섰다.


▲ 알칼라에 위치한 세르반테스 생가에는 ‘돈키호테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머무름, 『돈키호테』에서 멈춘 라만차의 시간

인구 8,000명의 작은 시골 마을인 ‘콘수에그라(Consuegra)’는 『돈키호테』 속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마을 뒤편의 언덕을 올라가면 능선을 따라 줄지어 선 열한 채의 풍차가 나타난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콘수에그라 지역을 지배한 기사들이 살았던 고즈넉한 고성이 자리 잡고 있다. 비록 풍차들은 작동하지 않지만 오히려 정지해 있는 풍차의 날개가 이곳의 시간이 중세시대에서 멈춰버린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단,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걸음을 제대로 옮기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바람을 뚫고 언덕을 올라갈 각오를 해야 한다.

콘수에그라에서 버스를 타고 라만차의 또 다른 소도시인 ‘톨레도(Toledo)’로 향했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도(古都)로 작은 강이 휘돌아나가는 산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톨레도를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튼튼한 두 다리가 필수다. 게다가 도시를 둘러쌓고 있는 거대한 성벽 안 구시가의 건물들은 차량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자칫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톨레도의 골목을 한창 헤매던 중에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구시가의 중심부로 들어서는 골목 한 가운데에 선 세르반테스 동상이었다. 톨레도 시당국이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톨레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이정표가 돼준다.


▲ 스페인 광장의 세르반테스 목에 걸려있는 건 무엇일까?

종착, 알칼라로 향하는 순례길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 찾기에 대한 여정은 다시 마드리드로 향한다. 마드리드 자치주에 위치한 소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이하 알칼라)에서는 세르반테스의 삶과 스페인 문학의 살아있는 현장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알칼라는 세르반테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 만큼 도시의 많은 부분이 세르반테스와 관련돼 있다. 세르반테스의 생가와 그가 출생했던 병원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가 하면 도시 중심부에는 세르반테스 광장이 들어서 있다. 세르반테스 생가와 그 앞에 위치한 돈키호테 동상에는 여행객들의 ‘돈키호테 순례’가 끊이지 않는다.

이 중 병원은 방문해 볼 수 없지만 생가는 무료로 개방해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생가에는 각국 언어로 출판된 『돈키호테』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도 포함돼 있다. 생가에서 나와 세르반테스 광장을 지나 1분 정도 걸어가면 알칼라 데 에나레스 대학이 나온다.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기도 한 매년 4월 23일 이곳 대학에서는 ‘에스파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르반테스 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또한 해마다 태어난 10월 9일에는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르반테스 축제’가 시작된다.

이처럼 세르반테스는 한 도시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됐다. 나아가 라만차 지역 곳곳에서 돈키호테의 동상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세르반테스와 그의 작품 『돈키호테』는 스페인 문화의 가장 두터운 뿌리로 자리 잡았다. 또한 돈키호테와 산초, 그리고 로시난테가 누비던 라만차의 풍차마을은 세계인이 한 번쯤은 머릿속으로 그려봤음직한 풍경이 됐다. 놀기만 하는 여행이 아닌, 보다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대문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문학 순례길’에 올라보자.


글·사진_ 김홍진 기자 bj293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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