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스페인에 가다③

해골과 칼이 그려진 검은 깃발이 나부끼고 우렁찬 함성과 노래가 듣는 이를 압도한다. 영화 속 해적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말라가(Malaga)지역 축구팀 ‘말라가 CF’의 홈경기장인 ‘라 로살레다(La Rosaleda)’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라 로살레다는 쌀쌀한 날씨에도 관중들로 가득 찼다. 이 날은 말라가 CF와 축구선수 박주영이 뛰는 ‘RC 셀타 데 비고(Real Club Celta de Vigo, 이하 셀타 비고)’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경기장을 길게 가로질렀다.

▲ 라 로살레다 경기장에서 말라가 CF와 셀타 비고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마드리드, 삶의 일부가 된 축구

마드리드(Madrid)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 택시에서는 택시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 간간히 들리는 축구선수와 축구팀의 이름으로 축구에 관한 방송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유명한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대며 택시 기사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스페인어로 돌아오는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축구 이야기에 흥분한 그의 모습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축구는 스페인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케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가게 주인은 마드리드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의 열렬한 팬이다. 케밥집 한 쪽 벽면은 레알 마드리드의 포스터로 빼곡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좋아한다는 그는 팬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마드리드에는 흔한 노점상도 축구 선수의 사진이 있는 엽서와 축구팀 상징이 새겨진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다.

▲ 바르셀로나의 한 주점에서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말라가, 조금은 살벌한 응원문화

마드리드를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소도시 말라가다. 여행 일정상 박주영 선수가 뛰는 셀타 비고의 연고지인 ‘비고(Vigo)’에는 갈 수 없었지만 다행히 말라가에 머무는 동안 셀타 비고의 원정 경기가 열렸다. 경기 당일, 한국의 언론들은 박주영의 출전이 유력하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경기 시작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 따뜻한 바닷가 도시임에도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했다.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도착하니 곳곳에 팀을 상징하는 깃발과 목도리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보였다. 암표를 권하는 소년들 사이를 헤치고 예매한 표를 받아드니 그제야 경기를 본다는 실감이 났다.

경기가 시작되자 말라가의 서포터들은 말라가 CF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깃발을 흔들며 응원가를 불렀다. 응원 열기가 뜨겁던 전반 37분 말라가 CF가 선취골을 넣었다.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고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말라가의 관중들은 상대편의 반칙에 손가락질을 하며 야유를 보냈다. 말라가 CF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보일 때면 박수를 쳤다.

경기를 관람하던 빠끼꼬 씨는 “삼촌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온 선수를 알고 있다”며 “그가 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 후반 박주영 선수가 마침내 몸을 풀기 시작했고 박주영 선수는 때때로 벤치 쪽을 바라보며 교체 신호를 기다렸다. 하지만 셀타 비고의 동점골이 터졌고 기세를 몰아가려는 감독의 전략 때문에 결국 박주영 선수는 출전하지 못했다. 동점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경기는 끝이 났다. 현지 팬들만큼이나 한국 팬들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 박주영 선수가 몸을 풀고 있다.

바르셀로나, 축구는 우리의 자존심

스페인과 축구를 이야기할 때 바르셀로나(Barcelona)를 빼놓을 수 없다. 카탈루냐(Cataluna)주의 주도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에 TV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FC 바르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의 경기가 중계된다. 쇼핑객들로 붐비던 거리도 한산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TV로 고정된다. 술집 밖에서 창문 너머로 경기를 시청하던 알레한드로 씨는 “멕시코에서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 다음 주에 경기를 직접 볼 예정이다”고 말하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축구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이다.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인 캄 노우(Camp Nou)에 들어서면 반대편 관중석에 쓰인 ‘MES QUE UN CLUB’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는 뜻이다. FC 바르셀로나는 아직도 분리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캄 노우 내부 박물관에 진열된 수많은 우승 트로피는 이들이 느끼는 자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르셀로나가 고향인 루이스 씨는 “바르셀로나에서 축구 이야기를 할 때는 조심해야 돼요. 바르셀로나를 무시하는 투로 말하면 감정적으로 대응해버리곤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축구는 삶의 일부를 넘어 개인 혹은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을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웅원팀의 아쉬운 패배에는 함께 눈물 흘리는 그들의 열정은 가히 최고라 부를 만하다. 뜨겁게 심장이 뛰는 사람들의 나라, 올해 스페인에 가보자.


글·사진_ 문광호 기자 rhkdgh9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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