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인터뷰
소년의 결심에서 시작된 국민행복을 향한 31년의 길
김홍진 기자  |  bj293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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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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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김홍갑(도시행정 75) 동문 인터뷰

   

국가와 국민의 공익을 위해 일할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인 행정고등고시(이하 행시). 어렵기로 유명한 이 시험에서 우리대학은 매년 많은 수의 합격자를 배출해내고 있다. 김홍갑(도시행정 75)씨 역시 행시를 합격한 후, 오랜 시간 공익을 위해 일해 온 자랑스러운 동문이다. 지난해 31년간의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이제는 한국지방재정공제회의 이사장으로서 지방자치단체가 재해 등으로 입는 손실을 공제하는 데에 힘쓰고 있는 김홍갑 동문을 만났다.

Q. 지난해 오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소회(所懷)가 어떠신가요?
A. 지금까지 공직자로서 해왔던 일들이 참으로 보람 있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영등포구청 사회과장으로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적은 봉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그러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믿음, 즉 공직자로서의 신념은 단 한 번도 흔들렸던 적이 없었습니다.

Q. 공직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A. 고등학교 3학년 12월에 왼쪽 팔이 완전히 마비가 됐어요. 공부를 하려다가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는데 신경이 눌려 마비가 된 거죠. 8개월 동안 거의 팔을 쓰지 못해 결국은 재수를 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앞으로의 제 인생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죠. 다시 팔을 쓸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이었죠.
공직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때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기업에 취직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에요. 하지만 공무원이 된다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죠.

Q. 그렇다면 공직자가 되기 위해 전공을 선택하신 건가요?
A. 그렇죠. 예전에는 서울시에서 우리대학 학생들 중 일정한 비율을 7급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건 상당한 특혜였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해보니까 그냥 이대로 졸업을 해서 그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이상을 좀 더 높이 갖자는 결심이 섰어요. 그래서 2학년 때부터 행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죠.

       
▲ 김홍갑 동문이 한국지방재정공제회의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Q. 준비 과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왜 없었겠어요.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죠. 게다가 그 때는 학과에 행시를 합격해 공직에 있는 선배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행시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주위에 많지 않았죠. 고시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는데 윤재풍 교수님이 용기를 북돋아주셨어요. 행정학 계통에서 유명한 교수님을 초빙해 오셔서 자극을 주시기도 하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많이 불어넣어주셨죠.
2차 시험을 통과한 뒤 경기도 광주의 산곡 고시촌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아무 데서도 저를 안 받아줬어요. 그때는 하숙집마다 전통이 있었는데 신생학교인 서울시립대 출신이라고 말하니 무시하면서 하숙을 거절했어요. 간신히 하숙집을 구하기는 했지만 그 집은 소위 ‘경기고-서울대’ 출신의 하숙생들이 태반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밤마다 모여 경기고 교가를 불러대던 통에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어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경기고 교가가 기억이 날 정도예요.

Q. 행정안전부 고시출제과 과장,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대전광역시 행정부시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오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직위가 무엇인가요?
A. 행정안전부 고시출제과 과장 시절이 가장 힘들었어요. 공무원을 선발하는 모든 시험 문제를 여기서 출제하고 관리했어요. 시험출제기간이 되면 ‘안가’라고 불리는 고시출제실에 들어가 감금생활을 시작하게 돼요. 기밀유지를 위해 창문도 없고 외부와의 연락도 안 되죠. 7급 공무원 시험 때는 4주 동안 감금 생활을 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고시출제실이 서울 한복판인 종로에 있어 더욱 힘들었어요. 차라리 산골에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요.

Q. 그렇다면 고시출제과 과장 재직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제가 고시출제과 과장으로 있을 때 사상 최초로 맹인이 사법시험에 응시했어요. 그 한 명을 위해 점자 시험지를 만들어야 했죠. 그래서 고시출제실에서 점자문자를 제작하고 감수해주는 맹인 선생님들과 함께 합숙 생활을 했어요.
하루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라 뉴스에 자살소식이 많았어요.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맹인 선생님들은 불 같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눈이 안 보이는 자신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너무 쉽게 삶을 포기한다는 얘기였죠. 합숙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Q. 이제는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으로서 지방자치단체를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계십니다. 공직에서의 경험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A. 현재 한국지방재정공제회에 가입돼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공사·공단·조합을 회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회원간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회비를 모아 미래의 재해에 대비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공직 생활을 마무리할 때 즈음에 제가 이사장으로 내정돼 있었는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일한다는 점에서 공직생활의 연장처럼 느껴집니다.

Q. 공직자로서의 길을 갈 것인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A. 부디 자신이 30년 동안 일할 직업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결정하세요. 무작정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공부하는 직장인이라는 뜻인 ‘셀러던트’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공직자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돼요. 공무원이 된 후에도 자신의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돼요. 각 위치에 따라 요구되는 지식이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물론 어떤 직업을 갖든 잠깐씩 흔들리겠지만 그것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신념이에요. 공직에 대한 가치관과 직업관을 세운 다음에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정리·사진_ 김홍진 기자 bj293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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