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에 넣어뒀던 두꺼운 코트를 다시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날씨다. 4월 중순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다. 지난해 이맘때 즈음 여의도 윤중로를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벚꽃 나무 가지의 봉오리는 아직도 움츠려있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달력 속 사진의 풍경만 봄을 맞이한 기분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문 앞길을 따라 늘어선 벚꽃나무들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문 앞의 벚꽃뿐만 아니라 우리학교는 교정이 퍽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주말이 되면 드라마나 시트콤 등을 촬영하기 위해 방송차량들이 분주히 오가기도 했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나는 그때의 풍경을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떠올리고는 한다. 단순히 교정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곳에는 고교시절의 내게 가르침을 주신 소중한 스승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3년 내내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특히 3학년 때에는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밥 먹듯이 수업을 빠지고는 했다. 이쯤 되면 문제아로 찍혀 눈 밖에 날 법도 한데 선생님들은 졸업할 때까지 나를 바로 잡으려 부단히 애를 쓰셨다. 혹 부모님이 아시게 돼 더 꾸중을 들을까봐 잘못을 덮어주시기도 하셨으며 때로는 밥 한 끼를 사주시며 진심이 담긴 충고를 해주기도 하셨다. 하지만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선생님들이 베풀어 주시던 그 고마움을 알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선생님들이 진정한 스승이셨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대학에 입학한 해의 4월에 나는 고등학교를 찾아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들은 여전히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이제는 마음을 잡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그때 나는 선생님들의 속을 썩였던 일이 죄송스러워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 이후 학기 초나 방학이 되면 일부러 짬을 내어 고등학교를 찾았다.

대학 동기들은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을 찾아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신기해했다. 동기들은 대개고등학교 때의 선생님들과 별 다른 추억이 없다고 말했다. 굳이 시간을 내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찾아가도 자신을 기억할 만한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 나 또한 수험생활로 바빴던 고등학교 3학년을 보냈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분명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리고 당신을 반갑게 맞아줄 선생님들이 계실 것이다.

올해는 아직 선생님들을 찾아뵙지 못했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났을 즈음에는 피어있을 벚꽃을 바라보며 각자의 모교를 찾아가보자. 당신을 사랑했던 선생님들을 뵙고 대학 진학을 꿈꾸며 이런 저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옛날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흥진 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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