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예술가로 살고 싶습니다. 회화는 디자인을 망라한 모든 미술의 기초입니다. 이러한 순수 학문을 죽인다면 사회의 미래 또한 없습니다”

지난 22일 청주대 회화학과 김서희 학생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청주대가 21일 회화학과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회화학과 학생들은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회화학과 돌려 달라”, “잠재력 꺾는 청주대, 30년 전통 막지마” 등의 피켓을 들고 학교 곳곳에서 시위 중이다. 김서희 학생회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것 같지만 회화학과 폐지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 조선대 글로벌법학과 학생들이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묵언시위를 하고 있다.

갑작스런 학과 통폐합에 학생·교수 반발

자신이 속해있는 학과가 폐지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회화학과 학생들만이 아니다. 5월 초 배재대는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를 한국어문학과로 통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은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는 등 학과 통폐합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배재대 국어국문학과 정지홍 학생회장은 “농성을 시작한 첫 날 총학생회의 도움으로 60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시위를 했으나 일회성 이벤트 끝나 버렸다. 그 이후 우리 과에서 자체적으로 시위를 했고 시위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학교 측에서는 협상할 의지가 없어보였다. 어렵게 총장과 면담할 기회가 생겨 국어국문학과가 존속돼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지만 학교 측의 입장은 너무나도 단호했다”며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3학번 신입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 배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박설빈 씨는 “입학할 때 이미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을텐데 학교 측에서 이를 미리 공지하지 않고 신입생을 받은 것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현재 배재대 국어국문학과는 한국어문학과로 통폐합이 확정된 상태다.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은 통폐합이 되더라도 학과 커리큘럼을 단순한 언어학 계열이 아닌 인문학·어문학 계열로 구성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조선대 글로벌법학과 학생들도 법학과로 통합하려는 학교의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섰다. 통폐합 방안 발표 직후 일어난 묵언시위는 100여 명의 학과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조선대 글로벌법학과 이기쁨 비대위원장은 “우리 과는 조선대학교에서 학교 전체의 사활을 걸고 만들었다며 홍보한 특성화 학과이자 만들어진지 4년밖에 되지 않은 학과이다. 그런데 갑자기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학교 측의 부당한 졸속 처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과 통폐합에 반발하는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배재대 비주얼아트디자인학과 백 철 교수는 16일 대학 건물 내부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비주얼아트디자인학과는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3년 전 미술학부에서 분리됐으나 다시 미술학부로 통합돼야 할 상황이다. 백 철 교수는 “학과가 학부체제로 통합되면 현재 커리큘럼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학부로의 통합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디자인을 중시하는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1인 시위의 배경을 밝혔다.


학교 측, 통폐합되는 이유는 “낮은 취업률 때문”

여러 대학에서 학과구조조정을 감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취업률 때문이다. 청주대 회화학과, 배재대 국어국문학과, 조선대 글로벌법학과 역시 학교에서 요구하는 취업률 기준에 미치지 못한 학과들이다. 청주대의 한 관계자는 “취업률뿐만 아니라 전공선호도, 교육수요도 등 여러 항목으로 학과를 평가해 A부터 E까지 다섯 그룹으로 나눈다. 최하위 그룹인 E그룹에 3년 연속 해당될 경우 학과 폐지가 결정되는데 회화학과가 이에 해당한다”며 회화학과가 폐지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대해 청주대 회화학과 김서희 학생회장은 “학교 측에서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오로지 취업률로만 평가하고 있다. E그룹에 해당된 첫해 전시회도 취업 이력에 넣기로 합의했지만 올해 평가를 보니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게 일인데 취업률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취업률로 학과를 평가하는 대학의 태도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대학에서는 학문 탐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취업률을 바탕으로 학과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대학의 이러한 태도는 국가가 그 빌미를 제공한 면도 있다. 정부에서 대학을 취업률이나 신입생 충원율로 평가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학과 통폐합이 해당학과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많은 학생들이 학과구조조정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학교에서도 통폐합 방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독단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글_ 이설화 기자 lsha22c@uos.ac.kr
사진_ 조선대 글로벌학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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