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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구감독 데뷔한 서남원 동문 “첫 우승 이루겠다”
이철규 기자  |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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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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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대학에서 어떻게 배구를 하게 되셨나요?
A. 저는 당시 우리대학과 서울시청 배구단 모두에 소속돼 있었어요. 우리대학 학생신분으로 공부도 하고 시청소속으로 월급도 받았죠. 제가 대학을 다닐 때인 86년도만 해도 우리대학엔 스포츠 관련 학과가 없어서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그때 만약 스포츠에 관련된 과가 있었다면 거기에 들어갔겠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배구계에 우리대학 출신이 아주 많다는 것이에요. 이곳 도로공사팀의 전임감독이셨던 어창선 감독도, KGC 인삼공사 이성희 감독도 우리 동문이고요. 여자프로배구 6팀 중 5개 팀 감독이 우리대학 출신이었던 적도 있었죠.

Q. 감독님은 배구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A. 저는 초등학교 때 배구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시절 제가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에서 배구 선수가 될 학생을 뽑았는데 반마다 키 큰 사람들을 선발하더라고요. 저는 또래보다 키가 커서 선수에 선발됐어요. 그때는 체육관이 없어서 흙바닥에다 그물을 치고 라인을 그려놓은 뒤 연습을 했죠.

Q. 그 후로 쭉 배구를 하신 건가요?
A. 계속 배구를 했던 것은 아니에요. 중간에 배구를 두 번 그만둘 뻔했는데 제 은사님이신 이홍규 선생님께서 포기하지 않도록 그때마다 도와주셨어요.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배구를 그만뒀는데, 중학생 시절에 대전에서 배구팀 코치를 하고 계셨던 이홍규 선생님께서 저를 스카우트하러 찾아오셨어요. 선생님은 제가 재능이 있다며 저와 부모님을 설득하셨어요. 그때 저는 왠지 배구선수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바로 대전으로 갔죠. 그때부터 제 배구 인생이 시작됐어요.

Q. 그렇다면 두 번째 도움은 어떤 건가요?
A.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제 키가 175cm였는데, 그 당시 175cm는 고교 배구팀에 스카우트 되기엔 작은 키였어요. 스카우트가 아닌 방법으로 고교 배구팀에 들어가면 기숙사비와 학비를 모두 내야 했죠. 한마디로 돈은 많이 드는데 형편이 안 됐어요. 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그냥 시골로 다시 내려가 1년 정도 농사를 지었어요. 용접 기술을 배우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저를 스카우트해주셨던 이홍규 선생님께서 다시 연락하셨어요. 선생님은 “고등학교 못 나오면 장가도 못 간다”며 다시 배구를 하라고 하셨죠. 선생님은 계속 대전에서 배구 코치를 하고 계셨는데 “얼마 안 되지만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코치 일을 도우면 월급도 챙겨줄 테니 그 돈 모아서 고등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6개월 정도를 그렇게 보냈어요. 배구를 포기했던 1년 반 동안 키가 185cm까지 컸는데 키가 크고 나니 충남상고(현 대전 중앙고)에서 배구단에 들어오라고 연락이 오더군요. 이홍규 선생님은 저에게 있어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 토스 시범을 보여주는 서남원 감독
Q. 내 인생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A. 1987년 바레인에서 열렸던 세계청소년배구대회 결승전이에요. 그때 쿠바, 브라질, 독일, 한국 네 팀이 같이 독일에서 훈련을 한 적이 있어요. 훈련할 때 서로 경기를 몇 번씩 했는데 유독 쿠바 대표팀에게는 한 번도 이기질 못했어요. 본 경기에서 우리 팀이 러시아를 준결승에서 이기고 쿠바랑 결승전에서 붙게 됐어요. 주변에서 “쿠바는 힘들겠다, 아무래도 질 것 같다”는 말이 들려왔죠. 그래도 경기를 했으면 이겨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저는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군 면제가 된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19살이었고 군대도 안 갔던 터라 꼭 이기고 싶었어요. 열심히 뛰어서 결국 쿠바를 3-0으로 이겼죠. 그때 정말 짜릿했어요. 근데 알고 보니 군 면제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대통령 표창도 받고 격려금도 받았어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Q. 그렇다면 배구 지도자의 길은 어떻게 들어서게 되셨나요?
A. 선수 시절에 럭키 금성에 입단했어요. 거기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96년도에 은퇴를 했죠. 그때 막 삼성화재팀이 창단됐는데 저는 은퇴와 동시에 그곳 코치를 맡게 됐어요. 선수가 은퇴할 무렵엔 스포츠 행정이 적성에 맞는 선수가 있고 지도자가 적성에 맞는 선수도 있어요. 구단에서 저는 지도자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코치 생활을 삼성화재팀에서 10년, 국가 대표팀에서 7년 동안 했어요. 그러던 중 제 친구이자 동문인 이성희 감독이 GS칼텍스 여자 배구단의 수석코치 자리를 제안했어요. 거기서 1년간 수석코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제가 여자배구팀 감독으로 올 수 있게 해준 값진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도로공사팀에서 저를 감독으로 선발할 때도 여자팀을 지도해 본 경험이 있으니 여자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Q. 여자팀과 남자팀은 지도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A. 남자들은 아무래도 터놓고 얘기를 하면 사내들끼리 통하는 부분도 있고 좀 험한 말로 꾸짖을 수도 있는데 여자 선수는 그 부분에서 조금 조심스러워요. 한 번 더 생각하고 얘기를 할 필요가 있더라고요. 여자선수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이에요. 눈물도 많은 편이죠. 그렇지만 훈련할 때 강한 것만이 좋은 건 아니에요. 물론 훈련할 때는 힘들게 시키지만, 남녀에 따라 훈련 강도를 조절해야 해요.

Q. 팀원을 이끄는 나만의 철학이 있나요?
A. 처음에 이곳 도로공사팀 감독으로 왔을 때 우리 팀 선수들이 실수를 하면 당황하고 눈치를 자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요. 선수들의 표정을 밝게 하고 스스로 창의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요. 여자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와요. 19살, 20살, 어린 친구들이잖아요. 되도록 밝은 모습으로 운동하게 해주고 싶어요.

Q. 도로공사팀 감독으로서 앞으로의 포부 한 말씀 해 주세요.
A. 제가 코치로서는 17년 정도 경험이 있지만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처음 맡은 감독직을 잘 수행해야겠죠. 다른 여자프로배구 5개의 구단은 다 우승을 해봤는데 아직 도로공사팀만 우승을 못해봤어요. 도로공사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 싶어요. 이왕이면 제가 감독으로 있을 때 꼭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

정리_ 이철규 기자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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