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날 즈음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내어 수첩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공자선생의 다음의 글귀가 씌어 있었다. “학문이란 잃어버린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학교일, 학회일등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지난 몇 년간 나를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터라 어느 날 잠깐 글을 읽는 가운데 가슴에 와 닿아 적어놓은 글귀다.

돌이켜보면 20대 후반 대학원에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여 연구실에서 책속에 매몰되어 있었을 때 짬짬이 생각을 정리한 일기장의 제목이 ‘나를 찾아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여년이 훌쩍 넘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나는 처음의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남은 시간이 불안하기만 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교에서 마련해준 방에 앉아서 연구랍시고 한 지가 어느덧 15년이나 되었는데 과연 무얼 연구하였는가 싶다. 수십 편의 논문과 몇 권의 책을 짓기는 했지만 과연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물리학자나 공학자여서 세상의 새로운 이치를 밝혀내거나 인류의 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어떤 발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라드브루흐나 켈젠, 슈미트 같은 세계적 법학자의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연구실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서재를 뒤적이고 있는데, 조선 중기의 대철학자 이이선생의 『성학집요』가 눈에 들어와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 잠잠히 읽고 있노라니 참으로 선생은 그야말로 나의 구세주와 같았다.

선생은 방황하는 21세기의 영혼에게 명확한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을 놓아버리고는 찾을 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다” 앞서 공자가 하신 말씀 그대로다. 내가 여쭈었다. “그렇다면 청춘의 맹서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배우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읽어도 공부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뜻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선생의 냉정한 질책이었다.

선생의 엄한 꾸중을 듣고 서적에서 물러나 혼자 교정을 걸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더위에 매미들이 목이 터져라 울고 있다. 햇볕이 자신의 존재감을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나뭇잎들은 여전히 기죽지 않고 왕성하게 뻗어 가고 있다. 맑은 하늘에는 새들의 소리 들리고, 구름은 더 없이 높게 떠올라 세상을 즐기고 있다. 어디서 불어 왔는지 한 가닥 서늘한 가을바람이 힘없이 걷고 있는 내 뺨을 휙 훑고 지나간다. 순간 선생의 마지막 격려의 말씀이 귓가에 울린다. “마음을 놓아 버린다는 것은 마음이 딴 곳으로 달아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곧 보이지 않다가 깨달으면 또 곧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거두어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끌어당기면 곧바로 보인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 가벼워진 걸음으로 산책을 마치고 나는 연구실로 돌아갔다. 


김대환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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