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을 살았던 청량리를 떠나 왕십리에 이사 오던 날, 우연히 새내기 때 쓰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그래서 더 설레던 그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하지만 얼마간 이어지던 일기는 결국 노트를 다 채우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찝찝하게 끝나버린 일기장처럼 살다보면 제대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막 반을 지난 나의 대학생활도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끝나버릴까 두렵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을 자퇴한 친구, 사회 경험을 쌓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저마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뜨겁게 채워가고 있다. 게으르고 한가롭게 하루를 보내는 나와 비교하면서 부러운 감정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그들처럼 나의 삶을 채울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덴마>라는 웹툰을 알게 됐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공상과학만화임에도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고 줄거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결코 잃지 않는다.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는 그의 작화 능력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웹툰을 연재하는 만화가 양영순은 만화가로서 능력은 뛰어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외부적인 이유도 더러 있었지만 그동안 중간에 연재를 중단한 만화의 대부분은 쉽게 지쳐버리는 그의 성격 탓이 컸다. 그랬던 그가 웹툰 <덴마>를 벌써 4년째 연재하고 있다. 이전의 다른 만화들이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시간이다.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덴마>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마지막 장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말을 정해놓으면 이야기는 어떻게든 그 결말을 향해 간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덴마>는 짧은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완결돼가면서도 큰 줄거리를 이어나간다. 서로 다른 나름의 의미 있는 결말을 가진 에피소드들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끔은 이야기의 느린 전개에 답답할 때도 있지만 양영순의 웹툰은 꾸준히 끝을 향해 나아간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일을 ‘잘’ 마치는 것을 어려워한다. 게으르거나 이내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만의 결말을 정해놓는다면 그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 작은 이야기를 끝마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에피소드가 의미 있는 결말을 맺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말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실패인지 성공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나만의 화려한 결말,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눈앞에 닥친 작은 이야기를 멋지게 마무리해보자.  

문광호 기자(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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