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지난달 28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는 우리나라 대표 민요인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여주 강천중학교에서 온 20여 명의 학생들은 평화비 소녀상 옆에서 저마다 만들어온 피켓을 꺼내들고 <아리랑>을 불렀다. 피켓에는 ‘할머니들의 잃어버린 젊음은 돈으로 되찾을 수 없다’, ‘일본은 전시 성폭력 피해 할머니들의 인생을 보상하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강천중학교 문지원(15) 양은 피켓을 가리키며 “학교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슬로건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 내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갔을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오늘 이 시위에서 책으로만 봤던 역사문제를 마음으로 느끼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는 ‘공식사죄’, ‘법적배상’이라고 쓰여진 나비모양의 피켓을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난달 28일 1,089차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이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24일 돌아가신 故 최선순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 묵념으로 시작됐다.

▲ 한 학생이 피켓을 든 채 일본 대사관을 향해 서 있다.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사죄하라!”

발언대에 선 가톨릭대학교 김태형 씨는 “자신들이 저지른 잔학한 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도 부족한 일본정부가 오히려 이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를 잊은 자는 결국 과거 속에 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훈을 얻어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라며 “독일정부는 나치시절 만행에 대해 총리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습니다. 일본정부도 독일정부를 본받아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녀들의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을 끝맺었다.

실제로 제1차 내각 때인 2007년, 아베 총리가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발언했고 지난 5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당시 일본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위안부 동원이 전시 상황에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일본 내 정기인사들은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은 지난 5월과 6월 위안부의 강제 연행이 명백한 사실임을 보여주는 ‘도쿄 전범재판’과 ‘바타비아 군사재판’의 자료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아베 정권은 심지어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시인했던 1993년의 ‘고노 관방장관 담화’마저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김동희 사무처장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가 해야 할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의 올바른 방향을 강조했다. 국민기금은 1995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국민모금으로 걷은 위로금을 말한다. 김동희 사무처장은 “국민기금은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으로 볼 수 없다. 일본정부의 공식사죄를 주장해 온 할머니들의 뜻은 무시하고 ‘위로금’이라며 건네는 돈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공식사죄와 법적배상, 재발방지를 위한 역사 교육 등 국제법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며 “화해를 위해서는 피해자의 용서가 필요하다. 할머니들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정부가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대협에서 주관하는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가 방한했을 때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작했다. 하지만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수요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 지난달 2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수요시위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한국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2005년부터 시작해 9년 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김판수(75) 할아버지는 “위안부 문제가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아 나오게 됐다”며 수요시위에 처음 참여한 계기를 밝혔다. 이어 그는 “위안부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민족 전부가 당한 치욕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7명의 발언자 중 마지막으로 발언대에 선 경희대학교 권예하 씨는 “저를 비롯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일본정부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계실 텐데요. 저는 일본정부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분노도 참을 수 없이 끓어 넘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게 바로 우리나라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하는 등 국민들에게 못 보일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며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고3 때 처음 수요시위에 참여했다는 정대협 활동가 김선미 씨 역시 “처음 수요시위에 참여했을 때 ‘네가 아니어도 충분히 누군가가 그 자리에 외칠 것이다. 설마 10년까지 가겠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 자리에 서있다. 이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한편, “추운 겨울날까지 할머니들이 이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기억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 수요시위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_ 이설화 기자 lsha22c@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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