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법친 - 선배들의 처절한 직장 체험기

인문대 백화점 남(이하 인백남):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졸업하고 4월부터 서울 소재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인백남’입니다.
공대 통신사 남(공통남): 저도 올해 우리대학 공대를 졸업하고 모 통신사에서 6개월 남짓 근무하고 있는 ‘공통남’입니다. 익명으로 소개하니 마치 온라인 채팅 같네요.
도과대 외국계 기업 여(도외녀): 저는 졸업한지 조금 지났고요. 국내 대기업에 다니다 2년 전 퇴사하고 현재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통남: 취준생 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주위 친구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예요. ‘왜 나는 안 됐고 쟤는 됐지?’ 이런 생각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별로 관심도 없는 분야인데 누가 어디 붙었다고 하면 부럽고 마음이 불안해지고요.
도외녀: 맞아요. 저는 취준생 때 친구가 지원한 기업을 그냥 같이 지원해본 적이 있어요. 얕잡아보면서 ‘여긴 되도 안 갈거야’라면서 지원했었어요. 그런데 서류부터 떨어진 거예요. 자존심이 엄청 상하더라고요.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인백남: 그러다보면 내가 원하는 곳보다 어디라도 날 붙여주는 곳이라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가리지 않고 막 지원하게 되죠. 따발총 쏘는 것처럼 하나만 걸려라!
공통남: 그래서 이때는 자존감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자기 길만 가면 돼요. 관심 없는 분야, 가서 잘할 자신 없는 곳은 지원하지 않는 편이 낫죠. 그런 곳에 합격돼서 다니다가 금방 퇴사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인백남: 맞아요. 특히나 백화점은 입사 후 업무가 자신의 예상과 너무 달라 괴리감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 동기도 한 달 반 만에 퇴사했어요. 저는 경리과에서 일하고 있는데 저한테 영업을 시키더라고요. 상품권 판매, 텔레마케팅, 방문판매 등 다 해봤어요. 영업 나갈 때마다 담배를 얼마나 많이 피는지 몰라요.
공통남: 경영학과 졸업하고 회사 마케팅 팀에 들어갔는데 미수금 받으러 다니는 친구가 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업무를 받으면 당황스럽죠.
도외녀: 그래서 취업할 때 잡 디스크립션(job description)을 잘 알아봐야 해요. 직군만 보지 말고 실제로 그 직군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세요. 


인백남: 사실 취준생들이 말하는 ‘스펙’들 중에는 입사 후 실질적으로 도움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토익, 학점 이런 것들보다 더 많이 쓰이고 중요한 건…….
인백남, 공통남, 도외녀: 엑셀!
공통남: 엑셀, 파워포인트, MS워드는 직장인의 삼종신기죠.
인백남: 대부분의 기업은 엑셀을 사용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요. 기업에선 자기를 나타내는 것은 보고서예요. 보고서를 잘 쓰려면 엑셀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야 하는데 아직 학교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쓰잖아요. 그러니 신입사원들이 엑셀 때문에 애먹기 일쑤죠.
도외녀: 저희 회사 컴퓨터에는 한글 뷰어도 안 깔려있어요.
공통남: 보고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또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인 것 같아요. 자기 의견을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입사하면 미팅에서 브리핑 할 일이 되게  많고 모든 업무는 소통으로 이뤄져요.

 

도외녀: 말을 전달하는 능력도 중요한데 듣는 능력 역시 중요해요. 단순히 모든 미팅 내용을 타이핑하면서 녹취록을 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듣고 스스로 판단해서 정보를 재가공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인백남: 근데 이 역시 학교에서 기르긴 힘든 능력이에요. 아무리 조모임을 한다고 해도 소통을 통한 작업보다는 그냥 업무 분담해서 취합하는 걸로 그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런 소통능력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쌓아야할 것 같아요.
도외녀: 또 하나는 시간 관리예요. 직장인은 시간을 잘 쪼개 쓰지 않으면 안 돼요. 계획표를 쓰다보면 나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게 돼요. 나는 이 일을 며칠 만에 끝내는구나. 그 이후에는 나의 역량에 맞는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돼요.
공통남: 가끔 내 역량을 뛰어 넘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짜릿하죠.

▲ 졸음을 쫓기 위해 평소 회사에서 커피를 자주 마신다는 도외녀와 공통남

인백남: 지금 취준생인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가끔 저에게 “백화점 야근이 많나요?”라고 묻는 후배들이 있는데 대부분 회사는 다 야근해요. 직장 생활 편하게 하려고 하면 취업 못해요. 신입사원은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저도 ‘내가 이런 일 하려고 들어왔나’ 싶었어요. 양복 입고 창고 정리하고 배송 실수가 생기면 제가 택시타고 대신 배달도 갔어요. 영업하다보면 모두들 저를 잡상인 취급하죠. 선배들도 이런 산전수전 다 겪고 올라간 사람들인데 저도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일들 다 버텨야겠죠.
공통남: 맞아요. 신입사원 때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회사에 적응하는 시기에요. 회사 적응만으로도 정말 힘들어요. 눈칫밥 먹으며 생활하려니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요. 저는 가끔 잠이 오면 화장실 좌변기에 쪼그려 앉아 잠시 눈을 붙여요.
공통남: 그리고 저는 50대 부장님들과의 세대차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요. 그 분들은 무조건 회사에 오래 남아 일하면 칭찬받는 세대였잖아요. 그런데 저는 할 때 확 집중해서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해 투자하자는 입장이에요. 대신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일도 열심히 한 다음에 퇴근시간 지나고 7시쯤 집에 갔어요. 그런데 한동안 이렇게 생활했더니 부장님들이 요즘 신입사원 일 없냐며 부장님들이 눈을 흘기셨대요.
도외녀: 완전 공감해요! 이전에 다니던 회사도 일의 능률보다 무조건 오래 앉아있는 거북이 스타일을 선호했어요. 그런데 지금 있는 회사는 달라요. 늦게까지 남아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봐요. 왜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지? 머리가 안 좋은가. 아니면 미련하게 많은 양을 혼자 하고 있는 건가. 기업문화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인백남: 그렇지만 국내 기업에서 이런 분위기가 되려면 멀었어요. 여전히 거북이를 더 선호하죠. 세대 간의 문화 차이인데 이런 차이를 잘 모르고 눈치 없게 행동하면 욕을 먹어요. 이런 뒷이야기들이 내 인사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조심해야죠.
공통남: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면 150%의 일이 떨어지니까 너무 열심히 해도 안 된대요. 그렇게 되면 전처럼 똑같이 100%의 기량을 발휘하고도 ‘왜 50은 못했냐’는 소리를 듣는대요.
도외녀: 씁쓸하지만 진짜 맞아요. 신입사원의 패기로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했다가는 나중에 더 힘들어질 거예요. 일을 잘 하려면 초반부터 컨디션을 잘 관리해두는 것도 필요하죠.


인백남: 그래서 입사 초반에 잘 하는 게 중요한 건가 봐요. 도외녀 님, 어떤 신입사원이 예쁨을 받나요?
공통남: 이건 저도 궁금한데요?
도외녀: 우리 신입사원 얘기를 해야 하나? 음. 회사에서 말을 해주는 게 있고 안 해주는 게 있어요. 말을 해주는 건 해줄 때 잘 들어야하고 안 해주는 건 눈치가 있어야 해요. 말을 하는 거는 주로 업무에 대한 거죠. 이런 건 시키는 대로 하고 잘 익히면 돼요. 복장, 이메일 쓰는 법, 파일 관리! 이런 것들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선배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알아서 해야 해요. 선배가 이런 것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눈 밖에 났을 확률이 높아요.
인백남: 복장 기준은 참 애매한 것 같아요. 비즈니스 캐주얼이라고 해서 칼라티를 입고 갔더니 대충 입고 왔다고 잔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봤을 때 우리 팀장님은 피드백이 빠른 사원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업무 진행상황을 자주 보고해야 하죠. 그리고 제가 상품권 영업을 했을 때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500만원 넘게 팔고 칭찬을 받았어요. 신입사원이 뭔가 열심히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예쁘겠죠.

▲ 직장인들의 야근으로 회사건물은 늦은 밤까지 환하다.

인백남: 직장인은 일개미예요. 우리는 여왕개미의 배를 불려주는 개성 없는 일개미들이죠.
도외녀: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자유를 누릴 수 없어요. 그래서 이제는 돈으로 시간을 사고 있어요.
공통남: 맞아요!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막차를 신경 썼지만 이제는 내가 그렇게 놀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신나게 놀고 택시 타고 집에 가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택시비가 전혀 아깝지 않아요.
인백남: 이야기하다보니 직장인들 너무 불쌍한데요?
공통남: 이렇게 직장인들끼리 만나 수다 떨며 회포를 푸는 것이 직장인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인 것 같아요.
도외녀: 맞아요.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일 월요일이에요.
인백남, 공통남: 으악! 끔찍해. 내일도 힘내서 일합시다. 직장인 파이팅!


정리_ 장누리 기자 hellonoory@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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