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가장 유능한 사람은 배움에 힘 쓰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장 바쁜 사람은 배움에 힘 쓰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더욱 적합할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의 꿈을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수많은 학생들은 오늘도 노량진 고시촌에서 배움에 힘쓰고 있다. 노량진 고시촌은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의 전쟁터다.

학생들은 ‘합격’이라는 단 하나의 미래만을 바라보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차갑다. 이들은 1분 1초가 아깝다. 이들에게 점심 식사를 천천히 배부르게 먹는 것은 사치다. 고시생 A씨는 “이제 시험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깝지만 굶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학원 바로 앞에 있는 컵밥 노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 8시, 노량진역 1번 출구에서 육교까지는 고시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부산스럽다. 노점들은 천막을 걷고 장사 준비를 시작한다. 이 시간에 노점을 찾는 고시생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점심시간인 12시가 되면 컵밥 노점 앞은 고시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컵밥은 볶음밥이나 덮밥을 컵라면 크기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것을 말한다. 한 노점에서 컵처럼 작은 용기에 은박지를 싸고 주먹밥을 담은 것이 컵밥의 시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다른 노점으로 퍼졌고, 고시생들은 그것을 ‘컵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컵밥이 고시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노량진은 컵밥의 메카가 됐다. 지금은 볶음우동이나 베트남 쌀국수를 컵에 담아 팔기도 하며 컵닭, 컵돈까스와 같은 새로운 메뉴도 생겼다.

▲ 고시생들이 노점 앞에서 컵밥을 먹고 있다.
노량진 컵밥에는 고시생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잠시 벗어나 컵밥을 먹을 때 고시생의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오간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한 고시생은 “사실 여기에서 3년이나 공부하는 것이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럽다. 컵밥을 먹다보면 어렸을 때 부엌에서 어머니가 해주셨던 따뜻한 밥이 떠오른다. 컵밥을 먹고 열심히 공부해 부모님께 돌아가 당당하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컵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노량진 고시촌의 산증인이다. 이들은 컵밥집을 찾는 고시생 단골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9년째 컵밥 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장경복(65)씨는 “컵밥을 먹는 학생들을 보면 내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시생들이 내가 만든 컵밥을 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대견하다. 살기도 어렵고 고시생들 주머니도 좋지 않기에 이들을 위해 앞으로도 고시생들의 배를 채울 컵밥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노을이 지자 노점들에는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러 온 고시생들과 퇴근하고 온 직장인들이 다시 거리를 채운다. 고시생들은 자신들을 노량진이라는 거대한 컵밥 안에서 살아 숨쉬는 밥알 한 톨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고시생들은 오늘도 컵밥을 먹으며 그 밥알 한 톨이 컵밥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여행하는 꿈을 꾼다. 고시생들이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밥을 입 안에 넣을 때, 노량진 컵밥 노점은 오늘도 활기가 가득해진다.


글·사진_ 서주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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