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검찰은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으로 기소했다. 이석기 의원이 혁명조직(RO)을 소집, 내란을 선동한 언행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입수한 녹취록에 담겨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석기 사태 및 그와 관련된 국가보안법은 대학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떤 교수는 강의 중 혹시나 말을 잘못해서 국정원에 신고당하지 않을까 학생들의 눈치를 보는가 하면, 일부 대학 총학생회는 이석기 의원 사태를 비판하는 성명 발표를 하기도 한다. 수사가 끝나지 않은 이석기 사태가 대학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국가보안법 관심↑, 표현의 자유↓ 강의도 맘대로 못하는 세상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아니,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제가 큰일 날 소리를 했네요”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양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는 우리대학 한 강의실의 풍경이다.

지난 9일 경희대 임승수 교수가 한 수강생으로부터 국정원에 신고당한 뒤, 대학 내 강의실에서는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경희대에서 교양과목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강의를 가르치는 임 교수는 “내가 국정원에 신고됐다고 들었을 때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뿐인데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신고가 됐는지 황당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임 교수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주의』 등의 책을 저술한 것과 민주노동당 간부로 활동한 이력을 바탕으로, 임 교수가 반미사상과 반자본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국정원에 신고했다. 임 교수는 “유엔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한국이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있기는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말과 글에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이 계속 존속돼야 하는지 의문이다”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A(경희대 2)씨는 교수 신고 사건과 관련해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져야 할 대학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석기 사태 이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단지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비치기만 해도 종북 세력으로 오해받기 일쑤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석기 의원의 행동에 대해서는 물론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보고 많은 대학생들이 ‘좌파 진영은 모두 종북’이라고 생각하는 등 너무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총학생회, 규탄 성명 발표하기도 해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이틀 뒤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건국대, 세종대 등도 이석기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고려대 신강산(고려대 4) 정책국장은 “국정원 사태에 대해서 총학생회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왔다. 이석기 의원 사태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깨달았고 총학생회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항상 목소리를 내온 것처럼 이번에도 입장을 표명하자는 이유로 규탄 성명을 하게 됐다”고 성명을 발표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고려대에 이어 지난 11일 건국대 총학생회도 이석기 의원을 규탄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학내 곳곳에 게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건물에 붙어 있던 대자보는 모두 사라졌다. 건국대 안재원(건국대 4) 총학생회장은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을 들어보니 안보관,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도 위협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대자보를 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뒤 대자보가 다 사라진 것을 보니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모두 떼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총학생회가 이석기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는 데 반해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총학생회도 있다. 서울대 김형래(서울대 4) 총학생회장은 “사건이 벌어진 시점으로 보아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녹취록에 나온 내용들도 섬뜩해 국민들과 학생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며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됐고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총학생회에서 굳이 의견을 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대한 입장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낼 때는 우리가 이런 입장을 내지 않으면 정의롭게 사회가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 때이다. 하지만 현재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글_이설화 기자 lsha22c@uos.ac.kr
그림_ 박승아  nulz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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