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돌아왔다. 새로 생긴 쉬는 날만큼 더 기쁜 것이 있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쉰다는 것에 의미를 둘 뿐이다. 2013년 10월 9일 한글날은 한글이 반포된 지 567돌이 되는 날이다. 전국 곳곳에서는 한글날을 기념해 여러 가지 행사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띠는 행사 및 전시회들은 ‘한글’ 자체를 예술로 표현한 것들이다. 한글이 예술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낯설 수 있지만, 한글 예술은 우리가 보는 간판, 영화 포스터 등등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스며들어 있다.

▲ 1) 홀로 아리랑을 캘리 그라미 및 그림과 함께 표현한 작품
▲ 2) 한글 태권도 공연 ‘한빛’
▲ 3) 가장 보편적인 아리랑을 캘리그라피로 표현한 작품

▲ 4) 김재경 작가의 <아리랑 고개>

※ 1, 3, 4 는 모두 <한국 캘리그라피 디자인 협회 아리랑전>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한글, 감성을 담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글 예술은 캘리그라피(calligraphy)다. 캘리그라피란 손으로 쓴 아름다운 육필 서체, 즉 ‘손글씨’ 예술을 말한다. ‘활자는 읽지만 캘리그라피는 보는 것’이라고 표현하듯, 같은 글자라도 캘리그라피를 통해 수천, 수만 가지의 감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 캘리그라피 디자인 협회 아리랑전>에 작품을 출품한 캘리그라퍼 이승혜(31)씨는 “지금 시대는 기록하는 행위가 타이핑이나 터치로만 행해지죠. 하지만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라며 캘리그라피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캘리그라피는 다양한 언어로 행해진다. 그 중 한글 캘리그라피는 감성을 중시한다. 캘리그라퍼 공병각 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글씨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글을 내가 생각한 감정의 그 느낌대로 잘 표현했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글씨로 내 감성을 디자인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한글 캘리그라피는 변화의 폭이 넓다. 이승혜 씨는 “한글 캘리그라피는 어떤 자음과 모음, 받침으로 조합하고 공간을 연출하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과 그 변화의 폭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아요”라며 한글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설명했다. 또한 이승혜 씨는 “한글 캘리그라피는 굉장히 자유롭고 유연함과 동시에 파격과 강렬함 역시 지니고 있죠. 이런 특징들이 외국인들에게는 낯설고 신비로운 조형미를 접하게 하고 한국인에게는 모국어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각별함을 선사하죠”라며 한글 캘리그라피의 특징에 대해 말했다.

과거 붓으로만 행해졌던 캘리그라피는 현재 유성매직, 마카펜, 색연필 등 다양한 도구로 그릴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현재 많은 사람들이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갖고 있다. 또한 캘리그라피 관련 서적이 서점에서 높은 판매 순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이승혜 씨는 “한글 캘리그라피가 디자인 시장에 진입하고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인식되기까지 여러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어요. 다가오는 한글날을 맞아 다양한 캘리그라피 전시회가 문을 연다고 하니 오늘날 한글 캘리그라피의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확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라며 참여를 권유했다

▲ 5)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받아 만들어진 한글
▲ 6)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된 이육사의 <청포도>

한글, 시민과 함께 하다

현재 세종이야기 한글갤러리(이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1000명 시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한글 글귀전>은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갤러리에 찾아온 손님들은 지정된 아름다운 순 한글 글귀 및 낱말 중 하나를 고른다. 그 후 판자에 단어와 어울리는 그림을 배경 삼아 골랐던 글귀 및 낱말을 쓴다. 이 과정을 거쳐 글귀전은 완성이 된다.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졌다고 해서 수준이 낮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곳에서 도슨트(docent,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무보수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로 일하고 있는 김정빈(28) 씨는 “한글날을 기념해서 여는 기획전이다 보니 ‘한글’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시는 경우가 많아요.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은데, 어떤 작품은 한글이라는 글자를 삿갓, 태극기, 나무, 백조 등으로 구성해 그림을 그렸어요. 저희 기획전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물고기들을 글자로 구성해 의성어 ‘살랑살랑’을 표현한 그림, 엄지손가락 안에 ‘힘내’, ‘네가 항상 힘냈으면 좋겠어’, ‘넌 최고가 될거야’ 등의 글을 채워 완성한 그림 등 창의적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갤러리 매니저 이정연(29)씨는 “이 기획전을 통해 시민들이 한글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한글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전시가 행해지는 갤러리 바로 옆면을 보면 이상하게 생긴 의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글’, ‘아이쿠’, ‘와’, ‘하’ 등 한글이 의자로 변한 것이다. 이는 시민들의 상상제안으로 만들어진 의자들이다. 김정연 씨는 “시민들의 상상제안을 포트폴리오로 받았어요. 그 포트폴리오를 먼저 전시한 다음 투표를 거쳐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은 것들을 진짜 의자로 만든 것이에요. 앉아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답니다”라고 설명했다.

▲ 7)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1000명 시민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한글 글귀전>

한글, 하나의 몸짓이 되다

한글이 태권도와 접목된다면 어떨까.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를 실현가능하게 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Y-Kick Entertain ment(이하 와이킥)’이다. 와이킥에서 준비한 공연인 ‘한빛’은 태권도와 한글을 기반으로 한국 전통요소들이 융합된 공연이다. 태권도 및 한글과 함께 한복, 전통음악 등이 융합돼 말 그대로 ‘한국적인’ 공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외국인들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신선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와이킥 본부장 이창수 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브랜드인 한글과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한빛’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현재 광화문 광장에서 연중 상설공연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문화의 정수를 느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글은 실제로 태권도 외에 부채를 사용하거나 깃발을 펄럭이는 등의 행위를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이 공연을 관람한 A씨는 “한국인 및 한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공연이었어요. 비가 와도 열심히 진행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라며 후기를 전했다.

한글 예술가 유사라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글은 디자인 배경과 디자이너(세종대왕)가 명확한 세계 유일의 문자라서 사용자들에게 자부심을 줍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한글은 아름답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글자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 눈을 둬도 흔하게 보이는 것이 ‘한글’이라 어쩌면 무관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글날이 다가오는 지금 이 시점, 우리 주변에 놓여있는 한글을 눈여겨보자. 글자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어떤 모양으로 쓰였는지 혹은 내가 어떻게 글씨를 쓰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면 조금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글·사진_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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