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내리던 늦은 오후 학생회관 뒤편에 마련된 신문 게시판에 있는 신문을 교체하던 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수습기자일 때 ‘시대인 이야기’라는 코너에서 인터뷰했던 환경미화원 김정숙 씨였습니다. 그 분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제게 율무차를 사주셨습니다. 사주신 율무차를 홀짝이며 김정숙 씨가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이후에 자신에 대한 처우가 좋아졌다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 괜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따뜻한 율무차 때문이었는지 감사의 인사를 들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뜬금없는 이야기로 말을 꺼낸 것은 이 일로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 신문사 생활을 정리할 때가 다가오면서 저는 한동안 제가 남긴 것은 무엇인지, 소위 말하는 ‘업적’ 찾기에 혈안이었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만 원하고 ‘내가 이런 건 잘했지’하며 스스로 만족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저 가을날 오후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런 번잡한 생각들을 다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할까요. 제 노력으로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제가 이룬 것을 내세우려하고 때로는 신문사 생활에 회의를 느꼈던 그 순간들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애초에 저는 편집국장으로서, 기자로서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신문사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해준 동료와 선배 그리고 후배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취재와 기사 작성에 힘이 들 텐데도 항상 밝은 얼굴로 최선을 다하는 기자들이 있었기에 저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또 기자들 이외에도 신문사를 위해 항상 힘써주시는 주간교수님, 조교님, 교열 기자님들까지 누구하나 감사하지 않은 분들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서울시립대신문을 계속 사랑해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문 광 호
서울시립대신문사
제54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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