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경 본래 살고 있던 아파트보다 10평 정도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때까지 살던 곳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해 본 적이 없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짐을 줄여야 했다. 가장 먼저 없애기로 한 것은 집안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책들이었다. 한번 읽고 더 이상 읽을 것 같지 않은 소설책부터 오래된 전공 서적에 이르기까지, 아쉽기도 하고, 또 다시 필요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가차 없이 묶어서 차에 싣고 집 근처의 고물상에 가져갔다. 한번 버린 것으로는 부족해서 두 번 정도 고물상을 찾아갔고, 최근에 산 책들은 헌책방에 가져가서 팔았다.

책을 처분하고 나서도 짐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방을 차지하고 있던 침대를 없애기로 했다. 침대 역시 아이들의 금반지를 팔아서 산 꽤 값나가는 물건이어서 처분하기가 몹시 망설여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짐을 줄이는 노력의 결과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예전에 살던 집보다 결코 좁아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여전히 창고에는 풀지 않은 책 짐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것을 풀어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짐들도 언젠가는 헌책방이나 고물상에게 팔아야 할 것이다. 책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고, 생계의 수단이며,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나 자신이기도 한 물건들이었다. 그것들을 무게를 달아 팔 때는 나 자신이 팔려나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많은 책들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필요한 책들은 도서관에 있고 서점에도 있고, 인터넷에서 주문하면 언제든지 볼 수가 있다.

짐을 줄이고 나니 삶이 더욱 소박해지고, 간소해졌다. 집이 좁다보니 이제는 물건을 사는 일에도 신중해졌고, 아예 집안에 물건을 들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강아지똥>을 쓰신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은 반평생을 남의 집에서 사시다가 말년에 겨우 시골에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면서 사시사철 단벌로 지내셨다. 그분은 돌아가시면서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데 써달라며 10억 원이 든 통장을 남기셨다고 한다. 나도 나를 위해서 물건을 사기를 중단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살고 싶다. 소비를 줄이고 나서 생기는 여유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작은 집짓기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카무라 토모야가 지은 <작은 집을 권하다>에는 세 평 정도의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은 작은 집을 지으면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들을 누리고 있다. 집이 작아지면서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어 살이 빠진 사람도 있었고, 부부가 좁은 공간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깊은 대화를 하면서 친밀감이 높아진 사례도 있었다. 세 평 공간이라면 보통 아파트의 안방 정도의 크기도 되지 않는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 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들은 필요한 것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빼는 공간 구성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집안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필요한 것들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김학균(학사교육원 글쓰기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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