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러한데, 며칠 전 <문학의 이해> 교과목을 수강했던 한 여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자퇴할까 고민 중이라 했다. 그 순간에 ‘시를 공부하겠다는/미친 제자와 앉아/커피를 마신다’(<프란츠 카프카>)고 읊었던 오규원 시인이 떠올랐다. 취업을 위해 아등바등 하는 것이 요즘 세대의 초상일진데, 배부른 일과 거리가 먼 문학글쓰기를 하겠다고 한 그녀가 대견스럽다기보다 ‘어지간히 미쳤구나.’ 싶었다. 문학이론과 문사들의 다양한 로망, 그리고 수려한 문장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도 내심 그들이 진정 이 길을 선택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다른 길로 접어들기를 바랐던 것이 내가 아니었을까. 나는 창졸간에, ‘문학의 길을 걷지 말라’고 충고했던 어떤 스승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나도 저 학생처럼 홀렸으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거겠지. 어? 가만 보니 오규원의 ‘제자’와 저 ‘여학생’, 그리고 과거의 ‘나’가 만델브로트의 ‘프랙탈 구조’처럼 서로 닮은 게 아닌가.
생각해보면 어떤 일에 미치지 않고서 과연 성공할 수가 있을까. 제대로 미치려면 외부 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열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취업?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이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지를 느끼는 것이다. 또한 진정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이름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내면의 자아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 취업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 인간의 정신적 가치들이 수치화되어 물질로 전락하는 이 시대에, 저 여학생의 방문은 제법 생경했다. 대학졸업장을 포기하고 ‘고졸’의 레테르를 달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도 들었다.
행복한 성공을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 위해서, 그녀는 혹독한 신고식도 치를 것이다. 봄날은 꽃샘추위와 함께 오고, 갓밝이도 어두운 밤을 지새워야만 시작되는 법이니까. 공자는 물고기를 잡을 때 낚싯대를 던졌지 그물을 던지지는 않았고, 새를 잡을 때도 활을 쐈지 둥지에서 쉬는 새를 잡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그곳에 공을 들이면 가치도 높아지고 감동도 배가됨을 안 것이다. <동의보감>을 보면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그대는 취업 못함에 아파하지 말고 자기 내면과 통하지 못함에 아파해라. 자, 그대는 진정 ‘취업’을 원하는가. 그대는 그대와 통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