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바지와 삐딱한 스냅백. 목을 앞뒤로 흔들며 무조(無調)의 노랫말들을 침 뱉듯 뱉어내고 길바닥에 몸을 부딪치며 현란한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껄렁하고 반항적인 이 문화는 바로 힙합문화! 기성세대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질하겠지만 소위 ‘힙합하는 사람들’은 그런 손가락질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도리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킬 것이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생겨난 문화

'엉덩이(hip)를 흔든다(hop)'라는 말에서 유래한 힙합은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흑인문화이다. 쿵. 쿵. 중저음의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이던 것이 ‘브레이크 댄스’가 됐고 그 비트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으며 ‘랩’이 만들어졌다. 음악을 섞거나 변형시켜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디제잉’, 담벼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하는 ‘그래피티’도 힙합문화와 한 핏줄이다. 할렘가 흑인들의 삶이 녹아있는 음악, 춤, 심지어 그들의 삶의 대한 태도까지 우리는 이 모두를 힙합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힙합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유학생이나 미국 방송을 통해 힙합이 차츰 알려지다가 1990년대 PC통신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언더그라운드 래퍼 제리케이(30)는 “초기에는 힙합이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졌어요. 미국 흑인들의 랩을 따라하다 보니 마음에도 없는 사회 비판 가사를 따라 쓰는 모습도 보였고요. 그런데 이제는 힙합이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표출하는 음악이 된 것 같아요. 저도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랩을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내가 표현하는 ‘나’의 이야기

힙합이 여느 대중문화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은 바로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유상준(27)씨는 “자신감을 마음껏 표출하는 힙합의 스웩(swag)이 멋있어서 힙합을 좋아하게 됐어요. 랩은 다른 노래보다 음절 수가 많다보니 직설적이고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죠. 음악을 듣다보면 뮤지션의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 들어요”라며 힙합의 매력을 설명했다.

각자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다보니 그 소재도 다양하다. 사회비판적인 이야기, 사랑 이야기, 청춘에 대한 이야기, 음란한 이야기와 심지어 판타지까지! 언더그라운드 래퍼 허클베리피(30)는 “다른 장르에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들도 힙합에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랩, 댄스, 디제잉, 그래피티 등 형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권오경(사회복지 12)씨는 “자유로운 표현과 진솔한 가사가 힙합의 매력이에요. 음악을 집중해서 듣다보면 어느 순간 가사에 공감하게 되는데 그 쾌감은 정말 짜릿해요”라며 힙합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다양한 힙합퍼들이 각자의 삶을 충실히 표현하다보니 그것들이 현 시대를 반영하게 됐다. 언더그라운드 래퍼 펜토(29)는 “초기 힙합이 흑인들의 분노와 저항을 담고 있었던 이유도 그들이 당시의 억압된 삶을 표현했기 때문이에요. 흑인 래퍼들은 마약을 팔다가 죽은 친구의 삶, 돈에 무너진 자신의 삶 등을 노래해요. 그들과 같은 일을 겪을 순 없으니 우리는 우리만의 문제를 힙합의 한 형태로 풀어내고 있죠.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틀에 박힌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랩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힙합은 마치 문학과 비슷해서 그 시대성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래퍼 JJK(29)는 “랩은 문학성과 음악성을 모두 갖춘 예술이에요. 랩은 가사의 문학적 표현과 박자, 라임, 플로우 등의 음악적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해요. 그래서 어렵죠”라며 랩에 대해 설명했다.

 
힙합은 부정적인 게 아니야!

배틀과 디스는 힙합퍼들이 자신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험악해 보이지만 힙합퍼들은 이것을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자극하고 동시에 자신도 자극을 받는 그러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때 배틀과 디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정미진(환경공학 10)씨는 “비보이들은 종종 배틀을 통해 자신의 스킬을 뽐내요. 그런 배틀을 볼 때마다 비보이들의 실력에 입이 떡 벌어져요. 비보이들의 현란한 스킬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니 배틀은 싸움이 아니라 일종의 축제인 셈이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힙합 뮤지션들 간의 디스전이 뜨겁게 치러진 후 힙합의 디스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아졌다. 허클베리피는 “힙합에는 정말 멋있고 다양한 것들이 많은데 일부만 자극적으로 비춰지다보니 힙합문화가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한쪽에서는 힙합이 대중가요계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고유한 문화가 흔들리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JJK는 “진솔한 자기 얘기보다 대중들의 입맛에 맞춰 창작을 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보다 힙합의 새로운 예술적 시도들, 힙합다운 태도와 신념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저만은 뚝심 있게 고유의 힙합을 보여줄 거예요”라며 의지를 보였다. 힙합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넘치는 힙합퍼들과 팬들이 있으니 힙합의 정신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글_ 장누리 객원기자
hellonoory@uos.ac.kr
사진_ EtchFort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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