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일간지에 씁쓸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네 컷 만화가 실렸다. ‘종’을 치며 모금하던 구세군이 근처 벤치에 앉아 ‘북(book)’을 보던 아이에게 자기한테서 좀 떨어져라고 핀잔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때 검은 선글라스를 낀 ‘요원’ 두 명이 탄 승용차가 쓰윽 지나가는 게 아닌가. 언제나 장려와 칭찬의 대상이 돼야 할 두 행위, 즉 모금과 독서의 조합조차도 작금의 현실에선 이른바 ‘종북’의 덫에 걸려 들 수 있다는 어이없는 세태를 풍자한 만평이었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종북몰이를 앞세운 공포정치가 도를 넘고 있다. 심지어 유신정권이 부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구속된 이석기 의원의 종북 여부야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봐야 하지만, 이 의원을 후원한 대학교수까지 종북세력의 일원으로 명예훼손하는 행위가 버젓이 용인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고 ‘불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종교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조차 종북으로 매도되는 막장드라마까지 연출되고 있다.

북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으로선 그 실체와 의미가 불분명하기 짝이 없는 종북, 그 흔한 학술 용어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종북이 누군가의 구린 이익을 위해 우리 사회의 대다수 선남선녀에 대한 인신적 구속과 사회적 매장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고발, 경계하자는 취지다. 대놓고 북을 따르자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그저 현 정권의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했다고 이를 곧바로 종북으로 단정, 마녀사냥하듯 하는 것은 현 정권이 뭔가 뒤가 캥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 볼 성싶다. 남의 온정(溫情)이 구세군의 종소리에 실려 북의 누리로 널리 퍼져가는 흐뭇한 광경을. 설마 이런 상상마저도 종북? 종북몰이의 그늘이 참으로 짙기만 한 대한민국의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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