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대자보 릴레이 때부터 ‘안녕들하십니까(이하 안녕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일까. 안녕들의 열기가 사그라든 현재 모습에 전에 없던 아쉬움이 느껴졌다. 안녕들은 일반인들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궤를 달리한 운동이었지만, 이러한 안녕들마저도 손쉽게 식어버리는 ‘냄비현상’만은 피해갈 수 없었나 보다.

이번 대자보 릴레이는 소수의 사람이 행동하고 이것을 지지하는 형태의 기존 사회운동과는 달랐다. 수많은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부터 시작됐기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때 자발성을 보여준 많은 사람들은 다시금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소수에게 모든 것을 떠맡겨 놓고 각자의 삶 속에서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되돌아간 이유는 다양하다. 너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한다는 사람도 있고 안녕들에 회의감을 가지고 이를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조용히 있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바쁘기만 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회의감을 안겨 준 안녕들에게 분노하는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 모두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자신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안녕들의 틀도 벗어버리자. 언제까지고 안녕들이 당신의 ‘안녕하지 못함’을 책임져 줄 순 없다. 안녕들의 핵심은 ‘자신의 불쾌함을 사회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어떤 주제든 좋다. 자신의 삶 속에서 속 시원히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자. 변화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김준태 기자  ehsjfems@naver.com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