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넌 성공했어? 너는 인생 낙오자일 뿐이야.”
“적어도 나는 아직 사진에 발을 담그고 있잖아.”
“넌 니 애비가 남긴 신탁 기금으로 살아가면서 예술가인 척하는 개자식일 뿐이야.”
“적어도 나는 아직 노력하고 있어. 늘 사진을 찍고 있고.”
“넌 낙오자야.” “그러는 너는 성공했고?”
“나는 알아주는 법률회사에서 고정 고객이 있는 변호사…….”
“너 자신을 똑바로 쳐다봐. 넌 그냥 일개 사원이야. 네가 지금하고 있는 일과 꿈꾸던 일을 하나로 합치지 못…….”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클라우디베이 병으로 게리를 내려친 것이다. 병을 크게 휘둘러 옆머리를 쳤다. 병의 반쪽이 산산조각 났다. 깨진 병은 아직 내 손안에 그대로 쥐어져 있었다.

-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처』 중에서


미국 월(Wall)가의 변호사 벤은 소설 『빅 피쳐』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사진작가이다. 변호사는 아버지의 압력이 가해진 결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직업이다. 벤은 자신의 꿈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언제나 허무한 셔터질을 해댄다. 어느 날 벤은 이웃집 남자인 게리라는 사진작가가 자신의 와이프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한다. 벤은 순간의 감정을 못 이겨 게리를 죽이고 만다. 게리가 자신과는 달리 꿈을 좇고 있다는 점과 자신의 꿈을 희생해 얻은 소중한 가정을 처참히 파괴했단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벤에게 게리는 단순히 ‘타인'이 아니었다. 벤은 게리를 자신의 삶에 수도 없이 투영시켰을 것이다. 게리를 보며 삶의 방향에 대한 고뇌를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떠한 길을 선택하고 또,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에도 우리는 매 시간 매 분 타인의 삶을 우리의 삶에 투영한다. 타인을 통해 일종의 ‘정답’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 맞는 길인지, 무엇이 맞는 행동인지 말이다. 물론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꿈을 좇는 과정이면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지면 게리를 죽인 벤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타인의 자리를 너무 많이 내어주면 안 된다. 『빅 피쳐』의 주인공 벤은 게리의 죽음을 위장하고 자신이 게리가 돼 살아간다. 타인에게 집착하다 못해 매몰돼 버린 것이다. 벤이 그의 세계에서 게리라는 불청객을 쫓아냈으면 어떻게 됐을까? 사진작가라는 꿈에 재도전하며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매진했을 것이다. 모두의 세계는 완벽하다. 그러나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니라 자신뿐이다.

서현준 수습기자
ggseossiwkd@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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