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개강이다. 이제 곧 수많은 조별과제들이 밀려올 것이고, 그것 때문에 허덕일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시대군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조장으로 뽑혀 모든 일을 혼자 떠맡아야 했던 지난 학기를 되돌아보면 조별과제가 있는 수업은 당장이라도 수강취소를 하고 싶지만 전공과목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시대군은 이런 애로사항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조별과제에 나타난 딜레마들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조장은 누가? 지원자의 딜레마

가르치는 교수님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된 강의. 하지만 이 강의는 조별과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첫 수업 날, 교수님이 임의로 4명씩 조를 정해준다.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각기 같은 조로 지정된 사람들이 둘러 앉아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모일건지, 어떤 주제로 발표를 할 것인지 등을 협의한다. 대략의 얼개가 짜여지면 대망의 조장을 정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조별과제에서 조장은 당연히 가장 책임을 져야만 하기에 조장을 맡으면 피곤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나머지 조원들은 조장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돼서 비교적 편하다. 그래서 아무도 조장을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침묵 혹은 잡담으로 1시간이 지난다. 모두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조장이 되기 싫어 눈치를 보고 있다.

이처럼 처음 움직이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나머지 사람은 이익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아 그 손실이 매우 커지게 되는 상황을 ‘지원자의 딜레마(volunteer’s dilemma)’라고 한다. 한 명만 뛰어내리면 모두가 다 살 수 있는 구명보트에서 아무도 뛰어내리려 하지 않아 결국 모두가 죽는 경우, 어떤 사람이 폭력을 당해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아무도 이 외침을 못들은 척 외면해 결국 그 사람이 죽게 되는 방관자효과 등이 지원자의 딜레마에 속한다. 지원자의 딜레마 역시 둘 이상의 내시 균형이 발생한다. 4명이 조를 짠 경우, 1명이 조장을 맡게 되면 나머지 3명은 좀 더 편하게 조별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이때 내시균형은 4개가 된다. 위에서 예로 든 경우마다 한 쪽은 무언가를 잃는 반면, 다른 쪽은 무언가를 얻는 탓에 누군가를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역할은 내가 할래, 치킨게임

우여곡절 끝에 조장이 정해지고 나머지 조원의 역할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다. 조원들 모두 컴퓨터로는 게임 혹은 웹서핑밖에 할 줄 모르는지라 아무도 파워포인트 작업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일차적인 기본 자료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지원자가 꽤 많다. 조장이 중재를 했지만 결국 두 명이 끝까지 남아 서로 자신이 자료 수집을 하겠다고 야단이다. 둘 중 누구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 채로 1시간이 또 흐른다.

이런 상황을 ‘치킨게임(Game of Chicken)’이라 한다. 치킨게임이란 각 측이 서로 물러나지 않고 다른 측을 가능한 한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상황을 말한다. ‘벼랑 끝 협상’이라고도 하며, 막히는 도로에서 차가 끼어드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경우부터 국가 간의 대립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치킨게임은 발생한다. 치킨게임이란 용어는 영화 <이유 없는 방황>에서 유래됐다. 영화 속 주인공인 짐과 버즈는 훔친 차를 타고 돌진하다가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치킨(겁쟁이) 런’ 게임을 한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버즈였지만 얄궂게도 차에서 버즈가 뛰어내리는 순간 가죽 재킷에 달린 줄이 차 문에 끼어버려 결국, 차와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치킨게임의 문제점은 각자가 물러서지 않을 때, 이점을 얻을 수 있는 내시균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위의 상황을 통해 보면 두 사람 중 누구도 자료수집이라는 역할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각각 양보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양보를 받은 한 사람은 결과에 만족하게 되는 반면, 양보를 한 다른 사람은 불만족스럽게 되기 마련이다. 즉 한 쪽이 길을 내어주면 다른 쪽에게만 아주 유리한 내시균형이 성립되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물러나려 하지 않고서 그저 버티는, 그리하여 결국에는 둘 모두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이 치킨게임의 핵심이다.


무임승차, 무염치의 활개

여차저차해서 어쨌든 모든 역할분담은 끝난다. 다음 주까지 맡은 역할을 모두 수행해오자는 말과 함께 모임이 파한다. 그리고 다가온 다음 주. 한 사람만 빼놓고 모두가 약속장소에 나왔다. 바로 자료수집을 쟁취해낸 조원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전화를 해보니 전원이 꺼져있고, 몇 시간 뒤 아프다는 카카오톡 메세지가 달랑 하나 왔다. 왠지 이 조별과제의 운명이 벌써부터 정해진 것 같다.

이렇듯 사람들이 공동체 자원에 기여하는바 없이 그저 공동체 자원을 이용만 하려고 할 때 ‘무임승차(free riding)’ 딜레마가 발생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느냐, 아니면 자기 이익만 좇느냐는 문제 사이에서 사람들은 갈등한다. 무임승차를 한 조원의 경우 역시 모두 함께 해야 하는 조별과제에 기여하지 않고 다른 조원들을 이용해 거저 점수를 받으려 하고 있다.


둘 다 좋은데 어떡하지? 성대결

무임승차자를 교수님께 고발한 후 3명이서 합심해 조별과제를 해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한 조원은 효과적인 발표를 위해 파워포인트가 아닌 프레지(prezi)로 발표를 하자는 의견을 냈고, 또 다른 조원은 파워포인트로 발표를 하되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첨부하자는 의견을 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둘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기에 어떤 방법 하나만을 꼭 집어 채택하기가 애매했다.

이런 상황처럼 둘 다 좋은 선택이지만 이 중에서 굳이 하나를 골라야만 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성대결(Bach or Stravinsky)’이라 한다. 성대결은 어떻게 보면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치킨게임이다. 두 개의 내시균형을 놓고 두 사람이 동일한 항목을 선택해 함께 나아가기 위한 조율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대결이라고 해서 꼭 남성과 여성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성대결은 잘못된 명칭이다. 이 딜레마가 성대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처음 적용한 사례가 야구 경기를 보고 싶은 남성과 영화를 보고 싶은 여자의 경우였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따로 한다면 데이트의 의미가 없어진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혼자서 하기 보다는 상대방과 함께 한다는 점이 성대결의 핵심이다. 위의 상황 역시 조별과제를 조원들이 각각 따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진해 나가기보다 상대방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 여기서 잠깐! 내시균형

내시균형은 사회적 딜레마에 모두 적용되는 중요한 단어이므로 꼭 알아둬야 한다.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없거나 혹은 교환할 의지가 없는 경쟁, 충돌 상황의 경우 어느 쪽도 손해를 보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균형 잡힌 지점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내시균형이라 일컫는다. 예를 들어 두사람이 좁은 길을 마주 보면서 걸어오고 있다고 하자. 마침 비도 오고 질척거리는 날이라 지나가는 차들이 흙탕물을 튀기고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차도에서 멀리 떨어진 길 안쪽으로 걸으려고 한다. 하지만 길이좁은 탓에 두 사람이 다 길 안쪽으로 걸어갈 수는 없으며, 한 사람은 부득이 차도에 가까운 쪽으로 걸어가야한다. 즉 두 사람 중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봐야만 하는 균형점이 발생하는 것이고, 바로 이런 경우가 내시균형에 해당한다. 한편 내시균형이란 용어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수학자 ‘존 내시’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졌다.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사진_ tvN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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