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성의식 레드라이트

 
“임신이나 피임이 남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아요. 남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고, 서로의 합의에 의해 관계를 가진 거면 당연히 책임도 반반인 거죠.

제가 남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자들이 당신이랑 하고 있는 게 연애지 성애(性愛)는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이제 다 성인이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면 성관계를 가질 수 있죠. 무조건 싫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무성애자를 자처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생각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남자들 주장대로 성관계가 연인들에게 당연한 일이라면 왜 여자친구를 그토록 설득하려 하나요? 내가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우스갯소리지만 “오빠 믿지?”라는 말이 연인 관계를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자가 정말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굳이 저렇게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니까요.

연애는 단지 성적 본능으로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내 성적 본능이 성관계를 원하더라도 상대방을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은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요.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묻죠. “내가 얼마나 더 사랑한다고 말해야 내 마음을 알겠냐”고. 여자가 그 순간에 원하는 건 엄밀히 말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이 주는 믿음이에요. 단순히 관계를 갖기 위해서 설득하는 말을 듣겠다는 게 아니고요. 허울뿐인 말이라도 그게 사랑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져줄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러고 나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세요? 내가 이 사람이 좋아서 져준 건지 귀찮아서 져준 건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남자들이 여자들 생각처럼 동물적인 욕구만 있어서 성관계를 무조건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왜 여자들은 성관계를 ‘사랑해서 하는 행위’ 그 자체로 보지를 못하죠? ‘네가 날 사랑하는 것도 알고, 나도 널 사랑하긴 하지만 이건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라면서 덧붙이는 말 중에는 ‘남자들은 임신을 안 하니까 이해 못할 거야’라고 선을 긋는 것도 있죠. 이렇게 대화를 끊어버리면 제가 무슨 말을 더하겠어요. 그래요, 모르는 게 사실이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임신 가능성에 대한 여자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에요. 남자들이라고 연인의 임신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여자친구 생리 주기도 알아두고 피임도 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가 성관계를 거절하면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이고 성인인데 성관계를 갖는 건 당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성관계를 거절당하면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나 싶은 거죠. 저에게는 성관계도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여자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아니 여자친구가 원하는 충분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 남자들은 얼마나 더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되는 걸까요? 앞뒤 너무 재지 말고 서로가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는 없는 건가요?

정리_ 장한빛 수습기자 hanbitive@uos.ac.kr

이 글은 여대생 A씨(성균관대 3)와 B씨(가천대 1), 남학생 C씨(고려대 2)와 D씨(연세대 3)를 인터뷰 해 이성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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