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행을 떠올리니 오랜만에 들뜹니다. 기사를 쓰기 시작하니 그때 다짐하고 느꼈던 바들도 하나씩 떠오르면서 내가 그것들을 금세 잊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현재의 제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도 됐습니다. 이번 여행은 저의 첫 유럽 여행이자, 2년간 동고동락해 온 동기들과의 함께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해외 취재를 통해 저는 ‘나 홀로 해외여행’이라는 큰 꿈도 생겼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한 바람도 더 간절해졌습니다. 또 그때만큼은 기사 마감 걱정, 과제 걱정 없이 예쁜 풍경을 보고 지내 그런지 얼굴빛도 밝아졌습니다. 동기들이 그렇게 말해줬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체코에서 지낸 5일간의 여행을 곱씹어보니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프라하 이곳저곳을 걸으며 봤던 거리 속 이야기를 적기로 했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바를 통해 20대 청춘에 떠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편집자주-

 
“전혀 필요 없어요. 필요할 때 그때그때 끊으면 돼요. 근교로 나가지 않는 이상 교통권도 끊을 일이 없어요.” 프라하 시내 관광지와 교통을 모두 프리 패스할 수 있는 프라하 3일권을 끊을지, 대중교통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을 끊을지 고민하는 기자에게 한인 민박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믿어도 될까 하는 걱정도 잠시, 두 발과 두 다리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걷는’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해외 취재 일정 중 방문한 네 개 국가의 아홉 개 도시 가운데 프라하는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다. 도시가 크지 않고 관광지가 모여 있어 굳이 대중교통을 탈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있지만 프라하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리 자체가 주는 행복이 크기 때문이다. 분홍색, 연두색, 노란색, 하늘색 등 알록달록한 색의 건물 벽, 괴상하게 생긴 마녀 인형이 깔깔대는 길거리 마켓, 요상한 악기로 시선을 사로잡는 거리의 악사, 끝내 근원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트레들로 빵의 고소한 냄새. 프라하 거리를 걷다보면 눈과 입, 귀가 모두 즐거워진다.


 
틴성당과 천문시계가 위치한 구시가 광장

“여기에서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재즈바가 있고요. 체코 맥주 ‘버드와이저’를 제대로 맛볼 분은 저와 같이 민박집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구시가 광장에 위치한 천문시계와 틴 성당을 번갈아보며 감탄하는 투숙객들에게 야경 투어를 마친 민박집 아저씨가 말했다. “우린 어디로 가지?” 여행 첫 날 밤을 허무하게 보낼 수 없었다. 재즈바와 버드와이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엉뚱하게도 바로 앞에 위치한 길거리 호프집에 들어갔다. 틴 성당의 야경을 두고서 발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0m 높이의 틴 성당이 비닐 천막 너머로 보일 리가 없었다. 알폰스 무하와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에 가려져 성당 몸뚱아리도 보일락 말락 했다. 아쉬움에 이름 모를 맥주를 들이키는데 천문시계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12번째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사람들의 환호성도 계속됐다. 넋을 잃게 만드는 틴 성당, 금빛이 번쩍거리는 천문시계, 온 몸에 노란 전구를 감싸고 있는 트리, 빨간 지붕의 길거리 마켓, 설렘을 안고 북적이는 사람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17시간 비행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막힘없이 들어간 맥주 탓인지 은은한 조명을 따라 정신도 몽롱해졌다.

다음날 다시 찾은 구시가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아침에 본 틴 성당은 밤에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밤에는 노란 조명을 받아 아늑한 동화 속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면 아침에는 색이 빠져 얼룩덜룩한 벽을 드러내고 ‘나 사실 꽤 연륜이 있는 성당이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끝을 모르고 솟은 첨탑이 부각되는 덕분에 틴 성당의 웅장함은 밤보다 낮에 배가 됐고 광장에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는 부푼 가슴을 가라앉지 못하게 했다.

 매시 정각 천문시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각국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민박집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천문시계는 위쪽의 창문에서 예수와 12제자가 차례차례 지나가고 터번을 두른 터키인, 지갑을 든 유대인, 거울을 든 허영인 모양을 한 인형이 각자 몸짓을 하며 정각을 알린다. 틴 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천문시계 꼭대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별 기대 없이 천문시계 꼭대기에 올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사실임은 분명하지만 아무런 예상 없이 멋진 풍경을 맞이하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었다. 천문시계 위에서 바라 본 프라하는 온통 붉은 색 천지였다. 황토빛 지붕이 온 사방에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마한 프라하 성이 그 끝을 알리는 듯했다.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이 진짜 내 눈으로 보고 있는 풍경이 맞을까? “영화 같다… 꿈 같다”는 말이 입에서 계속 새어나왔다.


▲ 카를 다리 위의 예술가.
‘프라하의 봄’ 바츨라프 광장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우뚝 서 있는 신시가지는 구시가지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구시가 광장에는 흥겨운 음악 소리가 울리고 활짝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면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봄’을 떠올리는 사람들로 경건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체코를 떠나는 날 이른 아침부터 그 당시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기마상 주변을 맴돌았다. 바츨라프 기마상 앞에 분신자살한 두 청년의 추모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쉬운대로 그들의 간절함을 느껴보기 위해 국립박물관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랐다. ‘얀 팔라흐’라는 카를 대학 학생이 국립박물관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서 분신자살을 한 후 체코 여기저기에서 분신자살이 잇따랐다는 민박집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 위에 오르니 바츨라프 광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1968년 저 대로에서 소련군의 탱크에 수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안개 낀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듯했다. 반대편 계단으로 향하던 중 ‘JAN PALACH 1948-1969. JAN ZAJIC 1950-1969’라는 문구가 새겨진 아주 낮은 둔덕 두 개를 발견했다. 십자가 모양의 판자는 여기저기 부러진 모습이었지만 이곳이 두 청년의 무덤임에 틀림없었다. 분신한 얀 팔라흐를 치료한 의사의 말에 의하면 얀 팔라흐는 “나는 시민들이 프라하의 봄 정신을 포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화 정신의 저하를 스스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에 반대합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와 같은 나이의 대학생으로서, 정치학도로서 나는 얼마나 내 삶에 치열했는가를 반성하다 계단을 마저 내려왔다.


 
공주가 살고 있을 것 같은 프라하 성

“와아!” 보수공사 중인 국립극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물 너머로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프라하 성이 저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프라하 성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프라하 성 방향으로 걸으니 카를 다리의 입구가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600살의 다리’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카를 다리를 프라하에 머무르는 동안 이른 아침에 한 번, 노을이 질 때 한 번, 어두운 밤에 한 번 총 세 번을 걸었다. 사람이 없는 아침에는 나 홀로 조용히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 앞에서 소원을 빌기에 좋았고, 노을이 질 때는 강 위에서 보랏빛 하늘을 바라보며 낭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해가 지는 예쁜 풍경을 보고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키스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어두운 밤에는 조명 빛이 반사되는 강물 위에서 프라하 성의 고풍스런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옆에 두고 다리 위를 걸으니 자연스레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와’ 3주간의 여행 동안 떠오른 사람들에게 쓴 엽서에 빠지지 않고 이런 글귀를 써줬다. 멋진 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떠오른 사람들에게 하나씩 엽서를 쓰다보니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어느새 10장이 넘어 있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카를 다리와 프라하 성의 야경 사진을 찍으러 다시 한 번 국립극장 앞으로 나섰다. “너 어떻게 저 프라하 성을 묘사할래?” 동료 기자가 물었다. “공주가 나올 것 같아.” 대답을 들은 동료 기자들이 키득키득 거렸다. “지금 들리는 트램 소리만 없으면 딱이야. 시간은 중세시대이고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카를 다리를 건너. 저 안에는 공주가 살고 있는 거야.” 말을 하고 나서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정말 그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저기에 사는 공주는 아니야. 그냥 이 근처에서 시민으로 살면서 저 멋진 야경을 매일 매일 보고 싶어.” 한국에 돌아와 오랫동안 여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여행은 잠깐이어서 좋은 거지. 거기에 살면 그 아름다움에도 무뎌질 걸?” 하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한 달쯤 프라하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꿈 같고 영화 같은 생활이 일상이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내 얼굴도 아마 프라하의 풍경을 따라갈 것 같다!


글_ 이설화 기자 lsha22c@uos.ac.kr
사진_ 이철규 기자 27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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