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이라는 영화는 1840년대 노예 수입이 금지된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미국내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州)로 팔아넘기는 불법행위가 성행하게 됐고, 주인공인 솔로먼 노섭 역시 납치를 당해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노예가 된지 12년 만에 풀려났지만 자유인이었던 그가 점점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게 되는 모습을 보니 영 찝찝했다.

이 영화는 흑인 노예들의 잔혹한 현실을 그린다. 자신이 하루 동안 한 일의 양으로 평가를 받고 기준치에 미달되면 고문을 당한다. 여자 흑인 노예의 경우 강간을 당하기도 하는 등 그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영화는 불편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 크게 보도됐던 전라도 섬노예 사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노예 12년>이라는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이 영화를 찍은 감독 또한 화제가 됐다. 이 영화가 이토록 잔혹하고 처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를 총괄한 흑인 감독 스티브 맥퀸이 주위에서 보고 들은 차별 사례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이에 착안해 나는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대학생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 대학가 근처 커피숍에 하루 종일 앉아 대학생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아침에는 꽤나 한적했다. 하지만 한적함 속에서도 어쩐지 숨이 막혀왔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의 테이블에는 모두 토익, 토플, 텝스 등 국가공인영어시험에 관련된 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침부터 공부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내가 곧 겪게 될 현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점심 때가 되니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던 중 카운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아르바이트생은 커피를 계속 만들면서도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해졌을 무렵 무엇을 듣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었고, 매일 저녁 공무원 학원에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했다. 그는 복습할 시간이 따로 없어 수업을 녹음 한 다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듣고 있다고 했다. 그의 모습은 돈과 시간, 모두가 없는 대학생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윽고 밤이 찾아오자 오히려 점심, 저녁 때보다 대학생들이 더 많이 보였다.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모두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며 친구에게 첨삭을 부탁하는 사람, 이번에도 취업에 낙방했다며 좌절하는 사람 등 모습은 다양했지만 어쩐지 주제는 하나로 귀결되는 듯했다.

<노예 12년>이라는 영화에서 흑인들은 자유를 박탈당한다. 자유를 박탈당한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영화에서 봤는데, 16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현실도 그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양한 경험을 누릴 자유를 박탈당한 채 우리는 취업의 노예로 살고 있는게 아닐까.

정수환 기자 iialal9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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