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소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의 메달 결과를 전하는 KBS 뉴스에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김연아 - (실제로는 금메달인) 은”이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피겨 경기에서 불거진 편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경기 직후 국민들은 이른바 ‘홈 어드밴티지(Home Advantage)’를 언급하며 올림픽 개최국이자 금메달리스트 소트니코바의 모국인 러시아를 비판했다. 하지만 단순히 분노의 대상이었던 편파 판정은 국민 모두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변했다. 이는 국가적 차원의 서명운동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해 한 외국 인터넷 사이트(www.change.org)에서 이뤄진 판파 판정 번복에 대한 서명을 홍보한 것이다. 이 서명 운동은 목표치였던 300만 명의 서명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200만 명의 서명을 이끌어 냈다.


개인 아닌 ‘한 명의 대한민국’

소치올림픽 기간 중 방송됐던 한 LPG 충전소 광고는 5일만에 방영을 중단해야 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한 명의 대한민국이다”라는 문구가 지나치게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 시청자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이 광고를 일부 누리꾼들은 ‘캬~ 국뽕에 취한다’며 비꼬았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을 합친 말로 2011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처음 사용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극단적인 자문화 중심주의나 국가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비하하기 위해서였다다. 지금은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왜곡된 국수주의자들은 우리나라 선수나 기업이 뛰어난 성과를 냈을 때 그것을 개인의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피겨 스케이팅은 서구가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었다. 때문에 김연아라는 뛰어난 개인이 등장해 메달을 휩쓸었을 때 국수주의자들은 우리나라가 서구를 이겼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뽕은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소위 국뽕에 ‘취한’ 사람들은 비판적인 시각 없이 자문화를 바라보게 된다. 이런 태도가 심화되면 타문화에 대한 이해나 수용은 전혀 없이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무분별하게 강요하는 행태가 나타난다. 가원석(행정 13)씨는 “가수 싸이나 김연아 선수 등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들이 전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으면서 국뽕 성향이 심화된 것 같다. 외국인만 보면 김연아나 김치 등 한국에 대해 묻는다. 두유노(Do you know)로 시작되는 숱한 질문들 말이다”라며 국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국뽕과 애국심, 그 아슬아슬한 경계

억지 애국심을 유발하는 것에 반발심을 가지고 국뽕을 ‘까려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른바 ‘국까’다. 이들은 스스로가 자기 검열을 할 줄 아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주장하며 국뽕’의 무조건적인 애국심을 배척한다. 강현성(국제관계 13)씨는 “국뽕이 마약인 히로뽕에서 따온 말인 만큼 애초에 좋은 뜻으로 쓰일 수가 없는 단어이긴 하다. 하지만 이 말이 애국심을 비하하는 의미로 계속해서 쓰이다 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데 장애가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나친 국까는 자칫 사대주의로 흘러가기도 한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외국에 비해서는 뒤쳐진다며 외국을 지나치게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태도가 그러하다.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가 애플의 아이폰보다 훨씬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역시 *천조국은 다르다’는 말을 일삼는 것이다.

국뽕과 국까의 언쟁은 올림픽 같은 국제 경기가 있을 때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짧은 기간 수많은 국민들이 단결하고 한 목소리로 상대방 국가를 힐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경기 일정이 끝나고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논쟁은 잠잠해진다. 방학진 사무국장은 “애국을 위한 애국을 해야 한다. 헌법 정신에 나와 있듯 독립운동과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애국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며 선수들 개인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있지만 국가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올바른 애국심의 태도를 강조했다.

*천조국 | 미국 국방비가 1000조에 이른다는 걸 일컫는 말

장한빛 수습기자 hanbitive@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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